구본웅, ‘친구의 초상’, 1935.
구본웅, ‘친구의 초상’, 1935.

■ 국립현대미술관 신년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구본웅이 그린 친구 이상 초상
식민지식인 창백한 고민 드러나

김환기, 사별한 이상 아내와 결혼
문학에 애착… 스스로 詩 쓰기도


구본웅(왼쪽)과 이상.
구본웅(왼쪽)과 이상.
화가 이중섭(1916∼1956)의 그림 ‘시인 구상의 가족’은 우정의 산물이다. 6·25전쟁 때 월남한 이중섭을 위해 친구 구상(1919∼2004)이 자신의 집 옆에 방을 얻어 줬는데, 그때를 회상하며 그린 것이 한국 미술사의 걸작으로 남았다. 구상은 이중섭이 적십자병원에서 병사했을 때 장례 절차를 전담하고 유골을 수습해 나중에 일본에 있던 부인에게 전달했다.

이중섭과 구상에 앞서 화가와 시인의 우정을 그림으로 보여준 이는 구본웅(1906∼1953)과 이상(1910∼1937)이다. 어릴 적 사고로 척추장애를 평생 겪었던 구본웅은 네 살 차이가 나는 이상과 동네 친구였고 예술적 동지였다. 구본웅이 1935년에 그린 ‘친구의 초상’ 주인공이 이상이다. 예술가 이상의 붉은 야심과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창백한 고민을 극명한 명암 대비로 그려낸 작품으로, 구본웅의 내면도 함께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근현대기에 미술가와 문학가들은 친밀하게 교우했다. 시(詩)·서(書)·화(畵)를 일체화한 전통문화의 뿌리가 남아 있는 상태였고, 우리 미술가들이 크게 영향을 받은 유럽에서도 ‘그림을 시와 같이’라는 문예 운동이 퍼져 있었다. 그 때문에 1950년대에 파리에 진출한 김환기(1913∼1974)는 글을 통해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정신(詩精神)이오.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라는 각성을 토로했다.

이중섭, ‘시인 구상의 가족’, 1955.
이중섭, ‘시인 구상의 가족’, 1955.

김환기는 스스로 시를 쓴 시인이기도 했다. 그가 글재주가 뛰어났던 신여성 변동림과 결혼했을 때, 장안의 문인과 화가들이 총출동해 축하를 했다. 시인 정지용과 화가 길진섭은 사회를 맡기도 했다. 빼어난 수필가인 변동림은 이상의 아내였으나 사별한 후 김환기를 만나서 김향안으로 개명하고 결합했다.

이처럼 문학과 미술의 밀접한 관계는 우리 근현대 예술사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이 자산을 미술-문학인 네트워크 지도를 만들어 선보이는 전시가 예정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내년 2월 신년 기획전으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를 준비하고 있다. 덕수궁관에서 여는 전시는 문학가와 미술가 50여 명의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소개한다. 근대 회화 작품 130여 점, 서지 자료 150여 점, 사진 및 인쇄미술 등 시각자료 300여 점 등이다.

1부 ‘전위와 융합’에선 박태원, 김기림, 황술조 등 1930년대를 선도한 예술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공간을 연출한다. 2부 ‘지상(紙上) 미학’은 노수현, 이상범, 정현웅, 김규택 등 일제강점기에 신문사에 속해 삽화를 그렸던 이들을 다룬다. 문학과 미술가들이 언론을 통해 꽃피운 ‘화문(畵文)’의 성과를 만날 수 있다. 3부 ‘이중행각’은 김용준-이태준, 장발-정지용, 이여성-김기림 등 화가와 문인의 교우를 담는다. 서정주, 김광균, 조병화 등 문인이면서 수많은 미술인과 교우한 이들도 등장한다. 마지막 4부 ‘이심(二心)의 판’은 주로 화가로 활약했으나 문학에서도 일가를 이룬 나혜석, 박고석, 천경자 등을 살핀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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