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지민의 약속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주인공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Promise is promise.” 이 대사를 “약속은 약속일뿐이죠”로 번역했다면 화면에 빠져들지 못했을 성싶다. 세상은 검프를 발달장애로 규정했지만 그는 엄마의 가르침을 평생 놓지 않았다. 어조는 어눌했지만 어의는 분명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약속을 깨지 않는 최선의 길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 이렇게 써놓으니 세상의 온갖 깨지기 쉬운 것들이 문장 속으로 침입한다. 접시를 깨지 않는 최선의 길은 접시를 쓰지 않는 것. 사랑을 깨지 않는 최선의 길은 사랑을 하지 않는 것. 꿈을 깨지 않는 최선의 길은 꿈을 꾸지 않는 것. 적다 보니 숨이 막힌다. 접시 없이 사는 건 감수해도 사랑도 안 하고, 꿈도 안 꾸고 어떻게 산단 말인가.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김국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중). 그러나 약속을 깨는 건 경우가 다르다. 관계가 부서지기 때문이다. 노래 제목에도 ‘약속’이 많다. ‘아주 늦어도 상관없어/ 너의 자리를 비워둘게’(김범수 ‘약속’ 중), ‘한참 후에야 그 마음을 알았죠/ 내가 아닌 곳에 머물러 있다는 걸’(장윤정 ‘약속’ 중), ‘이젠 너에게로 달려갈 거야/ 너의 손을 잡고 너의 눈을 보면서’(버즈 ‘약속’ 중), ‘나의 삶이 놓아줄 때까지/ 지켜줄 수 있어 널 사랑하니까’(플라이투더스카이 ‘약속’ 중).

50년 전에도 음악동네엔 ‘약속’이 있었다. 통기타를 멘 청년의 이름은 이필원이다. 한국의 존 바에즈로 불렸던 박인희와 함께 ‘뚜아 에 무아’(너와 나)라는 이름으로 ‘약속’(1970)을 불렀다. 노래 속에 4가지 약속이 등장한다. ‘그 언젠가 만나자던 너와 나의 약속’ ‘잊지 말고 살자 하던 우리들의 약속’ ‘하늘처럼 푸르게 살자 하던 약속’ ‘모든 슬픔 잊자 하던 우리들의 약속’.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년도 ‘약속’을 노래했다. ‘이젠 내게 약속해/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라고 느껴도/ 널 버리지는 마’. 방탄소년단(BTS) 멤버인 지민(사진)을 ‘약속요정’으로 불리게 한 그 노래다. 그런데 뭔가 좀 다르다. ‘날 버리지 마’가 아니고 ‘널 버리지 마’다. 자세히 들어본다. ‘너도 아프잖아 (중략) 더는 아프지 않게 네가 웃을 수 있게’.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잭 도슨이 차가운 밤바다에서 로즈에게 전한 마지막 대사가 연상된다. “You must promise me that you’ll survive, that you won’t give up, no matter what happens.”(살아남을 거라고 약속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절대 포기 안 한다고).

이제 가수는 플로어(무대) 위에서도, 폴로어(팬) 곁에서도 노래한다. 그들은 인플루언서(Influencer)다.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발언하고 실천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방탄소년단을 ‘올해의 연예인’(Entertainer of the Year)으로 선정했는데 ‘고통과 냉소로 가득 찬 시대에 BTS는 다정함, 연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계속 전했다’고 분석했다. 내가 평을 쓴다면 ‘끼리끼리’의 내부자 문화를 ‘서로서로’의 기부자 문화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고 적고 싶다.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는 미국 제46대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자인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를 뽑았다. 바이든의 자서전 제목에도 약속이 들어 있다. ‘지켜야 할 약속’(Promises to keep)과 ‘약속해 주세요, 아버지’(Promise Me, Dad)다. 그에게도 어린 시절 검프처럼 말더듬증으로 놀림 받았던 상처가 있다. 타임은 그를 ‘공감의 힘과 치유의 비전을 보여주며 미국의 서사를 바꿨다’고 평가했다. RM과 지민은 2015년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한 후 “사랑을 주러 갔는데 반대로 저희가 사랑을 듬뿍 받고 왔네요”라고 글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보자던 약속을 2016년에 지켰다. 약속은 약속일 뿐이 아니다. 약속은 약속이다.

프로듀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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