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고문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걸출한 록 뮤지션 신해철(1968∼2014)이 작사·작곡·노래해 2002년 발표한 ‘민물장어의 꿈’ 시작 부분이다. 마지막은 이렇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난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단국대 서민 교수는 최근 그를 추모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아티스트이자,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은 통렬한 사회 비평가로 참지식인이었다’고도 했다. 서강대 철학과 2학년 재학 중이던 1988년 그는 록 밴드 무한궤도를 이끌고 제12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자작곡 ‘그대에게’로 대상을 받고, 이듬해 무한궤도 제1집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 후 또 다른 록 밴드 넥스트, 비트겐슈타인 등을 결성·활동하거나 솔로로 나서거나 하면서 ‘마왕(魔王)’ ‘교주’ 등으로 불리던 그가 남긴 명곡은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일상으로의 초대’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등. 그의 묘비명에 쓰인 노래 ‘Here, I stand for you’는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하고 시작한다. 이어지는 가사에는 ‘등불을 들고 여기 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난 나를 지켜가겠어/언젠가 만날 너를 위해’도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그의 또 다른 명곡 ‘우리 앞의 생이 끝날 때’가 더 생각난다는 사람이 많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교실/ 나는 기억해요/ 내 소년 시절의 파랗던 꿈을/ 세상이 변해갈 때 닳아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보지만’ 한 뒤, 이렇게 이어지는 노래다.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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