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송된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방송캡처
19일 방송된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방송캡처
반복되는 예능형 강연 논란
“구라 풀기” 저격당한 설민석
제작진 “일부 오류” 결국 사과
“팩트보다 강사 말발 의존
방송사는 자체 검증 부실”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가 오류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른바 ‘예능형 강연’ 프로그램의 구조적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송사가 강연자의 ‘콘텐츠’가 아닌 ‘대중적 인지도’에 의존하며 자체 검증을 소홀히 하는 지금의 구조에선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고고학 전문가인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서 “(19일 방송된)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편은 사실관계가 틀린 게 너무 많아 하나하나 언급하기 힘들 지경”이라며 “하고자 하는 것이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그 두 가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그냥 보지 마세요”라고 공개 비판했다. 곽 소장은 구체적으로 클레오파트라 시대의 배경이 된 장소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정보 등이 사실과 다르다고 꼬집었다. 이에 tvN은 21일 밤 입장문을 내고 “방대한 자료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자문단을 더 늘리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스타강사를 내세운 예능형 강연에 대한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인문학 강사 최진기는 지난 2016년 OtvN ‘어쩌다 어른’에서 조선시대 미술사를 강의하며 화가 이름을 잘못 언급해 구설에 올랐다. 설민석은 또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예능 방송에 출연해 “석굴암을 일제가 고의로 훼손했다”고 주장했다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4~2015년엔 교양서와 역사 프로그램에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한국 1호 룸살롱’ 태화관에서 ‘술판’을 벌였다”고 말했다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반복되는 논란에 대해 전문가들은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백종원 씨가 수많은 방송에 출연해도 별다른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요리’와 ‘밥장사’라는 전공 분야에 집중하기 때문”이라며 “학문의 세계에서 설민석 씨처럼 조선사, 한국 근현대사, 세계사를 넘나드는 전문가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설 씨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가 논란을 자초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방송사가 강연자의 연구 공력이나 콘텐츠보다 ‘말발’과 ‘전달력’ ‘유명세’에 비중을 두고 섭외하는 것도 문제”라며 “대중적 인지도에 의존하다 보니 자체 검증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말이 칼이 될 때’의 저자인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학계 시스템을 거론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시리즈 강연을 할 수 있으려면 단행본 수준의 호흡을 지닌 연구가 있어야 하는데 국내 대학·학문 시스템 안에서 젊은 연구자들은 ‘취업’을 위해 단행본이 아니라 논문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토막토막 짧은 논문만 써서는 책을 내기 힘들고 대중강연을 하기도 어려운 가운데 그 틈을 (검증되지 않은) ‘엔터테인먼트형 강연’이 치고 들어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관련기사

나윤석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