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산업통상자원부가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골자로 하는 전기요금 개편안을 지난 17일 발표했다. 연료비가 오른 만큼 전기료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을 해도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는다던 약속은 간데없다. 전기 1kWh당 60원인 원자력 발전과 80원인 석탄 발전을 각각 120원과 200원인 가스 발전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바꾸는데 전기료가 안 오를 수 있겠는가? 연료비 연동은 연료의 가격뿐만 아니라 종류가 바뀐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애초에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

탈원전 정책을 에너지전환정책이라고 포장만 바꾼다고 속을 사람이 있을까? 지금은 원자력 기관의 장이 된 환경운동연합 출신의 한 인사는 탈원전 정책을 해도 ‘맥주 한 잔 가격’밖에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잔이 매우 컸던 모양이다. 재생에너지가 비싸다는 비판에 백운규 전(前) 장관은 미국의 재생에너지 가격을 브리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달성되지 않는 가격이다. 사기였다. 이후 ‘당분간 전기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도 했다. 국민이 알고 싶은 건 당분간이 아니라, 탈원전 정책이 마무리된 뒤의 전기요금이다. 또, 그 당분간이 이렇게 짧은 시간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에너지전환재단이 ‘이제 국민이 합당한 전기요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냄새 풍길 때부터 뭔가 나오지 않을까 싶긴 했다. 그래도 ‘현 정부 내에서 전기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급기야 ‘연료비 연동제’를 발표한 것이다. 이제 전기료가 오른 게 아니고, 연료비 증가분과 탄소세를 받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극치다.

다음날 산업부의 해명 자료에서는 ‘소비자에게 가격 신호를 제공하고, 원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가 발전원(源)을 선택할 수 없는데, 정보 제공이 무슨 말인가? 소비자가 원자력발전을 원하면 소비한 전력 1kWh당 전기요금 60원에 공급하고, 재생에너지를 원하면 200원에 제공해야 선택권을 준 것이다. 발전원 구성은 산업부 멋대로 하고 비용만 국민에게 전가하면서 정보 제공이라 한다. 또,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란 결국 전기료를 올린다는 말 아닌가.

2017년, 제8차 전력수급계획을 세울 때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더니 결국 12월 27일 국회 보고, 28일 공청회 그리고 29일 오전에 원안대로 전력정책심의회를 통과시키는 초고속 처리를 했다. 이번 제9차 전력수급계획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달 전력정책심의회에서 이대로 가면 전기요금이 얼마나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업부 담당과장은 계산해 보지 않았다고 버텼다. 2050년 탄소중립은 달성되느냐는 질문에는 2034년까지 계획이기 때문에 모른다고 외면했다.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한 것도 다른 부서의 업무여서 모른단다. 오는 24일 온라인 공청회를 마치면 올해 안에 일사천리로 진행할 것이다.

상관으로부터 ‘죽을래?’ 하는 협박을 받지 않기 위해, 또 ‘신이 강림하여’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료를 작성해야 했던 공무원의 심경은 어떨까. 정권이 바뀌어도 직업공무원은 남아서 국정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권에서 거짓말쟁이가 된 행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바로세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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