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이른바 ‘5부(府) 요인’의 22일 청와대 간담회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한심한 위상, 나아가 민주주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5부 요인이라는 말부터 부적절하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국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지만, 국내적으로는 행정부의 수반이다. 따라서 외교 행사가 아니면 국회의장과 대법원장과 동격으로서 삼권분립의 한 축이다. 따라서 3부 요인이 동격으로 참석하고 필요하면 국무총리가 배석하는 형식이 옳다. 그런데 대통령 아래의 다섯 기관으로 격하되고, 심지어 대통령 비서실장과 관련 비서관까지 함께했다고 한다.

발언 내용은 더 문제다. 문 대통령은 “요즘 권력기관 개혁 문제로 여러 가지 갈등이 많다. 완전한 제도로 정착시키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그 점에 있어서 각별히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 달라”고 요청했다. 여러 갈등은 검찰개혁을 빌미로 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등을 의미할 것이다. 나아가 당부의 취지를 짐작하기도 어렵지 않다.

공수처법과 관련, 헌재 전원재판부에서 위헌 여부를 심의 중이어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은 직접 관계자이다. 헌재는 윤 총장이 제기한 검사징계법 헌법소원 및 효력정지 가처분신청도 심리 중이다. 이날 서울행정법원은 윤 총장 징계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법원은 ‘울산 시장 선거공작 사건’ ‘조국 전 장관 부부 사건’ 등도 재판 중이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 소장은 문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요청을 듣고 있었다. 제대로 된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이라면, 그런 언급에 대해 사법부 및 헌재 독립성 차원에서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간담회 시점도 의혹을 더 키운다. 코로나 사태 극복 운운 했지만, 국민에게는 불요불급한 행사의 취소는 물론 5인 이상 모임 자체도 금지하라고 했던 때였다. “힘을 모아 달라”는 것은 하수인 주문과 다름없다. 헌재는 결정 지연만으로 정권을 도울 수 있는데, 그런 조짐이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 농단 의혹보다 훨씬 심각하다. 2018년엔 김 대법원장이 대법관 전원 반대에도 문 대통령 한마디에 내부 자료를 통째로 검찰로 넘겼다. 사법부 독립 의지는 고사하고 이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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