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투트래블’에 팬데믹 확산
중단 발표한 날 만찬 드러나
‘일본학술회의’회원 임명 때
학자 6인 탈락시켜 여론악화
카리스마 부족에 참모 인물난
‘조기 총선’카드도 어려울 듯
일본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지난 9월 출범했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이 취임 100일을 맞은 24일 현재 조기 퇴진 위기에 몰려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스가 총리 본인의 연이은 실책과 오판으로 국민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학술회의 논란에 이어 ‘벚꽃을 보는 모임’ 관련 스캔들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검찰 조사와 국회 출석 압박에 직면하는 등 계승자를 자처한 전 정권의 유산 역시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스가 총리 개인이 뚜렷한 존재감이나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코로나 재확산 주범 ‘고투트래블’ 집착=스가 정권이 고투트래블(여행 장려 정책) 등 방역 조치와 양립하지 않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동안 쌓여 오던 일본 국민의 불만은 스가 총리의 ‘연말 회식 해프닝’으로 폭발했다. 그가 지난 14일 도쿄(東京) 긴자(銀座)의 고급 스테이크 전문점에서 70세 이상의 고령자 7명과 만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특히 이날은 스가 총리가 고투트래블 사업을 오는 28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전국적으로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한 당일이었다.
출범 당시 70% 안팎에서 이달 중순 40%(마이니치(每日)신문 조사)로 급락한 내각 지지율은 회식 논란이 일고 난 이후 39%(아사히(朝日)신문 조사)까지 급락세를 거듭했다.
정부가 국내 여행 경비의 일부를 지원해 관광 산업을 회복하겠다는 취지의 고투트래블은 스가 총리가 관방장관으로 재임할 때부터 애착을 갖고 주도해 온 정책이다. 그는 11월부터 바이러스 확산세가 빨라지고 전문가들의 중단 권고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이를 강행하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일본 정부는 “고투트래블로 현재까지 1조 엔(약 10조7000억 원) 규모의 경제 성장 효과가 있었다”(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 담당상)며 위안하고 있지만, 민심은 달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스가 총리가 코로나19 대응을 잘 못하고 있다’는 답변이 과반수였고, ‘고투트래블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다나카 히데유키(田中秀征) 전 경제기획청 장관은 “병상·간호사 부족 등으로 일본 국민이 ‘의료 붕괴’ 위기를 느끼고 있는 와중에 스가 총리는 감염 방지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집착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면모는 회식 중이라도 대화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다소 모호한 ‘마스크 회식’ 제안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아베 정권 부정적 유산에 직격타=스가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가속한 것이 코로나19 상황이라면, 그 시작은 지난 10월 불거진 ‘일본학술회의(SCJ)’ 논란이다. 일본 학자들의 대표 기관인 SCJ 회원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스가 총리가 아베 정권 시절 안보법제 정비 등에 반대했던 학자 6인을 탈락시킨 것을 두고 여론이 들끓었다. 학계에선 “SCJ가 ‘예스맨 모임’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 이는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부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까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줄줄이 현 정권에 날을 세웠고, 국민도 “표현의 자유와 무관” “SCJ는 개혁의 대상”이라는 스가 총리의 해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취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10월 초에는 임명 거부 철회를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총리 관저 앞에서 열리기도 했다. 아베 정권 때 3차례 자행된 일을 반복하며 역풍을 맞은 셈이다.
아베 전 총리의 유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재임 기간 정부 행사인 ‘벚꽃을 보는 모임’을 이용해 유권자들에게 거액의 향응을 제공했다는 의혹과 관련, 아베 전 총리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일은 스가 정권에 직격타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2차 아베 내각 내내 관방장관을 지내며 ‘아베 후계자’의 이미지를 굳힌 그는 처음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이를 부인했으며, 총리 취임 이후에는 재조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도쿄(東京)지검 특수부는 아베 전 총리가 벚꽃 스캔들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불기소 처분하기로 했는데, 이를 두고 트위터에선 ‘#아베 전 총리의 기소를 요구합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의원 사직 요구 등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 총리 추천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정권 출범 후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 직무대행 자리에 오르는 등 스가 총리의 ‘측근 중 측근’으로 분류되는 요시카와 다카모리(吉川貴盛) 중의원 의원이 계란 생산·판매업체인 ‘아키타 푸드’로부터 500만 엔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도 스가 정권에 이중의 타격을 가했다.
◇카리스마 부족… 스가에겐 ‘아베의 스가’가 없다=스가 총리는 취임 초기부터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을 상대할 때나 국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할 때 준비된 문서를 기계적으로 읽기만 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특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과 관련해선 기존 답변을 단조롭게 반복해 이른바 메시지 ‘발신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함께 스가 총리에게는 ‘아베의 스가’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가 관방장관이 가스미가세키(霞が關·도쿄의 행정 중심가)를 관할하고,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맹우’로서 정치력을 보탰던 아베 정권 때와 같은 충실한 보좌역이 없다는 것이다. 이 둘에 더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보복을 총괄하기도 했던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총리비서관 겸 보좌관이 있었기에 아베 전 총리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다고 지지(時事)통신은 분석했다.
스가 총리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국회대책위원장 등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며 당무와 국회 운영을 맡기고 있지만 정책 면에서는 스스로 전면에 나서는 경향이 짙다. 이에 따라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 다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 후생노동상 등의 존재감이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민당은 당분간 중의원 해산 및 조기 총선을 통한 재집권 시나리오를 꿈꿀 수 없게 됐다. 스가 총리도 “제일 중요한 것은 코로나19 대응”이라며 중의원 해산 시점과 관련해 말을 아꼈다. 지지통신은 “연초 해산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으며, 내년 10월 중의원 의원 임기 만료까지 선택지는 좁아질 뿐”이라고 전망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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