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가 사악해질 때 | 찰스 킴볼 지음, 김승욱 옮김 | 현암사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등
종교가 사악해지는 5가지 이유
이슬람·기독교 중심으로 짚어
타인 종교 중요하다 인정하는
다양성 포용이 사악해짐 막아
찰스 킴볼은 ‘종교가 사악해질 때’에서 종교가 사악해지는 다섯 가지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절대적인 진리’만을 되풀이하고,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며, 자기 종교만의 ‘이상적인 시대’를 확립하려 든다면 종교는 이미 사악함의 계단에 올라선 상태다. 또한 이런 가치관을 옹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고, 궁극에는 이 모든 것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벌이면서 ‘성전(聖戰)을 선포’하는 종교는, 이미 사악함의 정점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가 사악해질 때 나타나는 징후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저자는 종교가 “허공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종교를 초월적 영역에 두려는 세간의 인식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즉 “가르침과 실천의 추상적이고 독립적인 집합체”로 이해하는 일은 종교의 한 측면만을 본 것이다. 오히려 종교는 “사람들의 가슴속과 머릿속, 그리고 그들의 행동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종교 그 자체가 문제여서 사악해지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가슴·머리·행동 속에서 재정립된 종교가 사악해지는 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 첫 시작은 자기들만 절대적인 진리를 알고 있다는 배타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기독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죽었다는 복음”을 절대적 진리로 여긴다. 이슬람교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전령”이라는 사실을 첫 번째 기둥으로 삼는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이슬람과 기독교는 역사 이래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고, 이 진리의 싸움이 오늘의 세계 역시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불교도 다르지 않았다. 13세기 일본에서 일어난 니치렌 종파의 창시자 니치렌은 ‘묘법연화경’만이 정당한 경전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르마를 훼손하는 자를 죽이는 사람은 나중에 업보를 지지 않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차치하고, 그것 때문에 타인을 배제하고, 심지어 죽일 수 있다는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다.
이상적인 시대를 만들겠다는 열망은 이슬람과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존재케 하는 하나의 동력이다. 기독교는 오만과 죄 때문에 추방된 에덴동산의 회복을, 무슬림들은 인간의 망각과 오만 때문에 멀어진 생명의 원천, 즉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1979년 혁명을 통해 이슬람 공화국이 된 이란은 물론이고, 1990년대 수단·알제리·아프가니스탄에서는 각각 다른 형태의 ‘이슬람 국가’가 기치를 올렸다. 20세기 후반, 직접 정치에 개입해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현실 정치와도 깊이 연관된 임신중절 반대, 동성애 반대, 총기 규제 반대 등의 사안에 개입하며 미국의 (일부) 기독교는 자신들만의 잣대로 규정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성전 선포를 이슬람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더 극명해졌다. 물론 전 세계에서 자살 폭탄 테러 등 크고 작은 테러에 이슬람이 관여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를테면 오사마 빈 라덴이 ‘성전’이라 주장한 9·11에 맞서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도 또 다른 의미에서는 성전 선포다. 테러의 주범뿐 아니라 무고한 시민이 얼마나 많이 스러져 갔는가. “인류 역사상 종교의 이름으로 치러진 전쟁이 가장 많고, 종교의 이름으로 살해된 사람이 가장 많으며,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악행이 가장 많다. 이 슬픈 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해결책의 시작은 “전통에 뿌리를 둔 포용적인 믿음”을 회복하는 길이다. 종교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쉽게 말하면 내 종교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종교도 중요하다는 생각만 가지면, 종교가 사악해지는 길을 막을 수 있다. 어렵지만 꼭 가야 할 길이며, 지금 급박하게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 종교가 살고, 세상도 종교의 이상을 긍정할 것이다. 400쪽, 1만70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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