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맞은 굴, 어디서 즐기나
“오직 바다의 맛과 즙이 풍부한 식감만 입안에 남았을 때 나는 껍데기에 남은 차가운 바닷물을 마신 후 입안을 화이트와인의 청량함으로 또 한 번 씻어낸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공허한 기분을 털어내고 행복에 젖어 다음 계획을 세우게 된다.”
척 보기에도 행복 무량한 이 글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썼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에서 굴이란 굉장히 고급 음식 축에 든다. 우린 그저 피식 웃고 만다. 한 접시 시켜 소주와 마시기에 부담 없는 안줏거리가 한국의 굴이다. 밥집에선 밑반찬으로, 술집에선 서비스로 나오고 굴을 한 양동이씩 구워 먹고 국에 넣어 끓이기도 한다. 심지어 김장할 때 맛이 들라고 수북이 넣기도 한다.
세계에서 신선한 굴이 가장 싼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세계 양식 굴 생산량 2위인 대한민국의 굴은 저렴하고 싱싱하다. 청정해역에서 채취, 직송한 석화를 바로 까먹고 구워 먹고 끓여 먹는다. 아예 알굴을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한다. 세상 어느 곳에도 이런 호사는 없다.
레몬즙을 살짝 뿌린 굴을 그대로 입안에 넣고 혀로도 으깰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운 그 살을 씹으면 바닷물과 섞인 짭조름하고 청량한 육즙이 그대로 느껴진다. 진한 육즙에는 뭔가 비교하기도 어려울 진한 풍미가 배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감칠맛이다. 찬물에서 자란 제철 굴 맛이다. 우리 국토에선 오로라, 대평원, 에메랄드빛 바다, 사막, 만년 설산은 볼 수 없지만 한국인이라면 가끔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지독하게 감사해야 한다. 특히 굴이 나는 요즘엔 더욱 그렇다. 굴 시즌을 맞아 굴 요리 잘하는 집을 모았다.
와인과 맛보는 ‘오이스터 바’
# 조선기술 = 굴의 다양한 참맛을 맛볼 수 있는 곳, 이름하여 ‘오이스터 바’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나 보던 뉴욕식 오이스터 바가 서울 한복판에 생겼다. 얼추 운동화만 한 삼배체 등 통영, 고성, 고흥에서 직접 주문한 귀하고 다채로운 굴을 신선한 석화 상태로 맛볼 수 있는 바를 매장 안에 비치했다. 얼음 위에 올린 신선한 굴을 육안으로 확인한 후 선택하고, 전통 고추장을 첨가한 특제 소스와 서양식 식초 소스 등 2종의 소스를 곁들여 샴페인이나 와인과 함께 낭만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맛이 제대로 든 굴이지만 맞춤 소스가 입맛을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조선기술은 바다와 배를 테마로 한 재치 넘치는 디자인과 인테리어로 오픈부터 화제를 모았다. 에콰도르에서 공수해온 옥수수 전분 나초부터 스테이크까지 갖추고 있으니 굴이 아니어도 만족할 만할 식도락이 가능하다. 시푸드가 아니라 이른바 ‘십(ship)푸드’를 표방한다. 서울 종로구 종로3길 17 D타워 4층. 1만5000원부터.
통영 종갓집 솜씨로 부친 전
# 충무집 굴전 = 상호도 통영의 옛 이름 충무집이다. 도다리쑥국, 멍게비빔밥, 물메기탕, 잡어회, 멸치회 등 통영 향토 음식을 내는 노포다. 겨울이면 통영에서 직송되는 신선한 굴을 식탁에 올린다. 통영 종갓집 전통 솜씨로 맛깔나게 부쳐낸 굴전이 맛있다. 그냥 먹어도 될 것을 아깝게 왜 전을 부치냐고? 좋은 식재료는 열을 가해도 그 신선도는 어딜 가지 않는다. 제철 맛이 든 굴은 달고도 진하다. 굳이 다른 감칠맛(간장)에 찍지 않아도 충분히 혀를 적신다. 굴은 본래 짭조름한 바다 맛을 품어 간도 적당하다. 고소한 기름 맛을 더하고 싱그러운 파 맛까지 얹어주니 안 그래도 부드러운 굴을 흐뭇하게 삼킬 수 있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30-14. 2만7000원.
곰장어와 함께 먹어도 금상첨화
# 용머리숯불꼼장어굴찜 = 서울 망원동 유수지 외진 곳에 있는데 어찌들 알고 찾아오는지 줄이 늘 길다. 커다란 네모 스테인리스 찜기에 석화를 잔뜩 얹고 중탕으로 끓여 향긋한 굴찜을 낸다.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석화가 입을 벌리고 탐스러운 속살을 내보인다. 마이클 잭슨처럼 한 손에만 장갑을 끼고 돈가스 나이프로 탱글탱글한 알굴을 발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싱그러운 바다 내음을 남긴 채 꿀떡 넘어간다. 원래 진한 맛이라 그 여운이 오래간다. 찜기가 커서 양도 꽤 많다. 서너 명이 소주 몇 병을 그냥 비워낸다. 다른 메뉴로 곰장어가 있어 자릴 옮기지 않고도 연회가 이어진다. 밖에서 기다리는 이들만 괴로울 뿐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로 19 참존아파트. 4만3000원.
특제양념장 발라먹는 색다른 맛
# 호반 강굴 = 가을부터 봄까지 강굴을 판다. 이곳 강굴은 강(江)굴이 아니다. 광양에서 유명한 민물굴(벚굴)이 아니라, 서해안 서산 앞바다에 사는 자잘한 굴이다. 원래 씨알이 작은 게 아니라 간조 때 수면 위로 나와 햇볕을 받아 그렇다. 굴은 물속에 잠겨 있을 때 큰다. 2∼3㎝ 정도 크기에 거뭇거뭇 푸르스름한데 고소한 맛이 진하고 물날개가 많아 씹는 맛이 좋다. 한 접시에 한가득 강굴을 담아낸다. 초장 대신 양념장을 주는데 고소한 맛이 잘 어울린다. 크기가 잘아 귀찮다면 숟가락으로 퍼 양념장을 얹은 다음 한술 꿀꺽 삼키면 만족감이 더하다. 굴 말고도 순대나 병어조림 등 한식 메뉴와 물김치, 콩비지 등 밑반찬이 맛있기로도 유명하다.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26길 20. 3만5000원.
얼큰한 짬뽕속 화려한 조연
# 맛이차이나 = 요리면 요리, 식사면 식사. 자자한 입소문을 끌고 다니는 상수동 중국음식점이 겨울 한정으로 해물과 채소를 큼지막한 굴과 함께 볶아 육수에 말아낸 굴 짬뽕을 선보였다. 애호박과 양파, 배추 등이 아삭하고 이를 품고 있는 진한 육수가 일품이다. 감칠맛이 녹아난 국물이라 일반 짬뽕보다 약간 점성이 있어 면이 따로 놀지 못한다. 면을 채소와 함께 집어 입에 넣고 씹으며 사발을 들어 후루룩 국물을 마시면 식도를 타고 온몸에 맛이 돌기 시작한다. 건더기도 푸짐하고 국물도 넉넉하다. 국물이 혀에 짝짝 붙어 면을 다 건져 먹고도 밥을 말고 싶을 정도. 서울 마포구 독막로 68. 1만 원.
막걸리 한 잔~ 부르는 굴전·굴젓
# 열차집 굴전과 어리굴젓 = 서울 종로를 ‘전집 거리’로 유명하게 만든 대표 노포다. 밥 메뉴 없이 전만 부쳐다 파는데 요즘은 굴전이 인기다. 도톰하게 살이 오른 굴에 계란 옷을 입혀 바로 번철에 부쳐낸 굴전은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름내가 가시기도 전에 차가운 어리굴젓(굴조개젓)을 얹어 한입에 쏙 넣는다. 뜨거우면 재빨리 막걸리를 들이켜면 된다. 굴전에 굴젓이라니. 굴과 굴이 만났지만 맛도, 온도도 대비돼 새로운 조화를 이룬다. 방금 부쳐낸 굴전은 감칠맛을 주고, 칼칼하니 양념을 흠뻑 묻힌 어리굴젓은 깔끔한 마무리를 돕는다. 막걸리 한 모금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맛의 코스다. 서울 종로구 종로7길 47. 1만4000원.
# 고흥 월포가든 = 매생이가 든 굴 칼국수라니. 겨울 바다의 친구 둘이 거금도 식당의 한 사발 안에 들었다. 통영에 위판하지 않는 지역 자생굴이다. 물론 투석식이나 지주식으로 키우긴 한다. 바다에서 났지만 해조류와 어패류는 많이 다르다. 맛도 다르다. 굴이 아미노산 특유의 감칠맛으로 밑국물을 받치면 매생이가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내는 형식으로 의기투합한다. 여기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칼국수가 들어 있어 졸깃졸깃 씹는 맛을 더한다.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호로록 빨아들이면 좁은 입안으로 넓은 바다가 밀려든다. 아연과 타우린, 칼륨까지 다양한 무기 영양도 좋다. 뜨거운 매생이 굴 칼국수 한 그릇에 겨울바람 차가운 줄 모른다. 고흥군 금산면 오룡동길 19. 7000원.
돌솥밥 한그릇에 영양 한가득
#서산 간월도별미영양굴밥= 서산 간월도는 어리굴젓이 유명한 지역. 또 굴을 넣고 지은 굴밥 또한 별미다. 간월도 인근에 있는 간월도별미영양굴밥은 주문 즉시 돌솥에 굴밥을 지어 올린다. 송알송알 굴을 얹고 밥을 안친 후, 돌솥에 밥이 다 되면 달큼한 양념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데, 얼핏 쉬워 보이지만 집에서 재현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맛을 낸다. 곁들이는 찬도 면면이 좋지만 돌솥 안에 채소와 굴이 모두 들어 한 그릇으로 충분하다. 정말이지 ‘영양밥’이다. 갓 지은 밥에 굴 맛이 배어들고 거기다가 또 고소한 참기름 향이 나는 양념장을 비비니 어찌 맛이 없으랴. 입에 굴밥을 한 보따리 욱여넣고 코로 바다 내음을 함께 들이켜면 그 향기가 더욱 맛깔 난다. 따끈한 진국의 굴국밥도 있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1길 69-1.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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