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탄신일. 우리 정부가 현재 공문에서 쓰는 성탄일 명칭이다. 알다시피, 기독은 그리스도의 한자어인 ‘기리사독(基利斯督)’을 줄인 말이다. 이런 음차어는 조선조 말에 많이 쓰였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파고가 중국을 통해 우리에게 미친 탓이다.
우리 종교사를 더듬어보면, 성탄일이 기념일로 처음 인식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독립신문이 1896년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일이라 세계 만국의 큰 명절이니 조선 인민들도 마음에 빌기를’ 바라는 글을 실으면서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그로부터 120여 년, 성탄절 역사에서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신도들이 성당의 미사와 교회 예배에 참석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가톨릭 본산인 명동 대성당도, 개신교의 대형 교회들도 비대면으로 성탄 행사를 진행한다.
이런 변화에 무력감을 호소하는 신도들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고요함 속에서 그리스도 사랑을 새기는 기회라며 반기는 이도 많다. 성탄 행사에 관성적으로 참여했던 것을 돌아보고 예수 탄생 의미를 차분히 성찰하겠다는 소망에서다. 상술(商術)이 장악한 거리의 불빛에 휩싸이기보다 감염병 사태로 고통받는 이웃을 살피며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비대면 성탄의 역설(逆說)이다.
가톨릭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일을 맞아 “어떤 팬데믹, 어떤 위기도 성탄절의 빛을 꺼뜨릴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빛이 우리 마음속을 비추게 해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자는 게 올해 메시지의 고갱이다. 교황은 최근 펴낸 책 ‘렛 어스 드림’에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형제애를 제시했다. 인류가 하나로 연결돼 있는 존재임을 깨달으면, 삶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 이웃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실제로 자신의 말을 실천할 예정이다. 내년 봄에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를 방문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그가 기독교 국가를 찾는다면 얼마나 열광적으로 반기겠는가. 그런데도 코로나 사태 이후 첫 방문지로 이슬람국가를 택했다. 종교 간 화합과 인류애 정신을 전하기 위해서다. 말로는 통합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론 팬덤에 의존해 분열을 자산으로 삼는 우리 정치 지도자는 이걸 보고 무얼 느낄까. 종교와 정치는 다르다며 자신을 합리화할까.
흥미로운 것은, 우리 불교 조계종이 교황의 인류애 선양을 맞든다는 것이다. 조계종은 지난 2010년부터 성탄절을 축하하는 연등을 밝혀왔다. 유독 힘들었던 올해도 어김없이 조계사에 크리스마스 연등을 켰다. 총무원장 스님은 “인류에게 사랑과 평화의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의 탄신을 축하한다”고 했다. 종교 벽을 넘어서 복음을 반기는 것이 불교 용어 그대로 대승적이다.
일부 기독교인은 크리스마스를 ‘홀리데이(Holiday)’라고 부른다. 타 종교인이나 무종교인도 기뻐하는 성스러운 날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나만 옳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아집을 넘어 내가 누리는 걸 나누는 ‘아시타비(我施他肥)’의 사랑을 새기는 것. 내남없이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건너온 기적을 찬미하고,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것! 성탄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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