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함께 산 아내 용숙에게

갑작스러운 출장 명령이 떨어진 것은 신혼 여행에서 막 돌아와 다시 출근한 첫날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리에 깁스까지 해 거동이 불편하셨던 어머니를 누군가가 돌봐드려야만 했다.

출장을 떠나는 마당에 ‘아내가 간호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어머니 병간호를 아내에게 맡겼다. 하지만 나는 결혼한 지 열흘도 안 된 새색시가 신랑도 없는 병실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일주일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할 겨를도 주지 않은 이기적인 철부지 신랑이었다.

일찍이 우리 집안은 결혼하면 부모님과 의무적으로 1년은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손맛을 배워 익히고, 가정의 전통적인 습관들을 배우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미 두 형도 그렇게 했다.

아내에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기에,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날을 일요일만이라도 이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결혼생활이 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흘러간 신혼 3년 차에 드디어 아내와 일전을 치르게 됐다. 뭐가 잘못인지도 모른 채 이해하기보다는 내 주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화를 내는 일이었다. 발단은 그날도 부모님이 계신 수원을 다녀오면서 빨리 따라오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아내는 그때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임신한 아내를 힘들게 했다.

첫 아이를 3개월 만에 유산하고 엄청난 상실감과 눈물 속에 지내온 세월도 잊은 채 두 번째로 가진 아기가 태어나던 날, 이미 출산 예정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도무지 소식이 없다. 유도분만을 시도했지만, 아기는 나오지 않고 양수에 아기가 오줌을 싸서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아기가 위험하다고 해서 어렵게 출산을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 말라버린 입술로 “힘들어요”라고 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고 미안하기만 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추운 겨울, 장기간 해외출장 중에 터져버린 보일러 때문에 우리 집에서 흐른 물로 아랫집 두 개 층이나 물난리가 났을 때 아내 혼자 거뜬히 해결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터진 보일러의 물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업체까지 불러서 깔끔하게 뒤처리를 했다. 귀가한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아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치열했던 병간호는 물론이고, 두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버젓이 취업하며 장성할 때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별 투정 없이 우리 가정을 잘 이끌어주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아내가 “영화 구경 가자”고 하면 난 늘 공수표를 발행하기 일쑤였다. 좋아한다는 산에도 한번 같이 못 가 주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그저 미안하기만 하다.

오는 26일은 결혼 30주년을 맞는 날이다. 신혼 여행 갔던 곳을 다시 찾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만들려 했지만, 코로나19가 방해를 놓고 말았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또다시 신혼여행지에 가고 싶다. 장인•장모님의 귀한 둘째 딸로 나와 결혼해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며느리였으며, 우리 예쁜 딸과 건장한 아들의 엄마이자 나의 사랑하는 아내 이용숙 여사! 고맙고 사랑합니다.

정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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