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등 5부(府) 요인과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과 5부 요인이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는 건 바람직하다. 문제는 회동 시점과 발언 내용이다. 그날, 문 대통령이 재가한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처분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의 첫 심문이 있었다. 윤 총장 측은 집행정지 신청을 “대통령 처분에 대한 소송”이라고 밝혔다. 또, 자신에게 정직 2개월을 내린 검사징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법원과 헌재에 제기된 윤 총장 관련 소송들의 당사자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판결을 내리는 법원과 헌재의 수장을 불러 놓고 “요즘 권력기관 개혁 문제로 여러 가지 갈등이 많다. 각별히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 달라”고 했다. 어떻게, 무슨 힘을 모아 달라는 건지 궁금하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법원과 헌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한,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다. 묵시적 청탁이나 사법농단으로 비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주문했다. 윤 총장의 죄라면 한 치의 정무적 판단도 없이 문 대통령의 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밖에 없다.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사건,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등 권력 비리 수사에 몰입했다. 그러자 대통령과 여권은 돌변했다. 윤 총장은 검찰개혁을 방해하는 ‘찍어내기’ 대상으로 전락했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칼을 빌려 윤 총장을 죽이는 ‘차추살윤(借秋殺尹)’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의 화룡정점은 아마도 대통령과 5부 요인과의 전격 회동이라 할 수 있다. 책임 윤리가 투철하고 제대로 된 대법원장이나 헌재소장이라면,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사법부와 헌재 독립성 차원에서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사법부와 헌재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면서 발생하는 ‘사법의 정치화’는 민주주의를 흔드는 적(敵)이다.
2018년 11월 존 티거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 판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반이민 행정명령의 중지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가 “제동을 걸었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은 “우리에게 오바마 판사, 트럼프 판사는 없다. 오직 법 앞에 호소하는 사람에게 공정하고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들이 있을 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맞섰다. 대통령 발언으로 ‘사법부 독립성’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용기 있게 행동한 것이다.
미국의 이 사례는 정파적 이해를 넘어 ‘독립적인 사법부’를 지키는 게 대법원장의 책임이고 소명임을 일깨워 줬다. 더불어 “어떤 정치적 압박에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대원칙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의 힘”이라는 사실도 보여줬다. 촛불 민주 정권이라고 자부하는 현 정권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 만연했던 독립적인 헌법기관들을 정권 하수인 취급하는 제왕적 관행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사법부와 헌재의 독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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