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화상 좌담회
/참석자/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장은수 출판평론가
사회 = 최현미 문화부장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의 글을 시작으로 올해 7월부터 매주 연재된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시리즈가 지난 22일 정지훈 모두의연구소 최고비전책임자의 통찰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물질, 생명, 세계, 통섭·융합 등 네 분야에 걸쳐 국내 대표적인 전공학자와 과학 필자들이 참여한 시리즈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 우주의 비밀, 디지털 윤리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최전선에서 진행 중인 과학 연구와 이들이 풀어가는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을 짚어낸 지적 탐구의 여정이었다. 또한 인공지능(AI)부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백신에 이르기까지 과학이 일상이 된 시대, ‘전문적’ 깊이와 ‘대중적’ 이해라는 두 요소를 모두 끌어안은 성공적인 ‘과학 커뮤니케이터’ 작업이기도 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시리즈를 기획한 이 대표, 필자로 참여한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그리고 출판평론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함께한 좌담을 싣는다. 최현미 문화일보 문화부장이 사회를 본 좌담은 지난 14일 오후 4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 ‘줌’으로 진행됐다.
―먼저 이번 시리즈의 의미와 성과에 대한 총평을 부탁드린다.
△이명현(이하 ‘이’) =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최전선’과 일반인이 관심 있는 ‘최전선’에는 다소 괴리가 있는데, 생명의 기원 등 과학계가 당면한 현안을 다루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이해가 가능한 수준에서 시리즈가 구성됐다. 독자들은 아마 엄청나게 어렵진 않지만 그렇다고 술술 읽히지도 않는 글을 읽으며 ‘지적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일반인들의 관심사에서 과학자들의 진정한 ‘최전선’으로 나아가는 단계에 있는 좋은 기획이었다.
△송기원(이하 ‘송’) = 같은 생각이다. 한편으론 ‘최전선’보다 ‘궁극의 질문들’에 방점이 찍힌 연재였다고 생각한다. 과학계가 품은 ‘궁극의 질문들’ 가운데 아직 풀지 못한 물음들을 분야별로 잘 다뤘다. 과학은 원래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장은수(이하 ‘장’) = 개인적으로 기존 책들이 다룬 내용, 질문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주길 기대했다. 이런 기대를 충족시킨 글이 여러 편 있어 행복했다. 예를 들어 송 교수님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짚어주셨는데, 쉽게 보지 못한 통찰이었다. 과학 전공자가 아닌 입장에선 ‘몇 걸음’을 더 나아가 준 게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 이명현
“우주·생명의 기원 제대로 다뤄
응집·고체물리학 더 다뤘으면
과학자, 인문학적 훈련 받아야”
- 송기원
“과학계의 ‘궁극의 질문’ 잘다뤄
과학으로 소통하기 어려움 절감
‘인간의 확장’ 논의해보길 바라”
- 장은수
“쉽게 보지 못한 통찰 있어 행복
대중의 과학 보는 눈 높여줘야
책 출간 등 후반작업 있었으면”
―더 다뤘으면 하고 아쉬운 분야가 있다면.
△송 = ‘물질로 만들어진 생명체에서 어떻게 인식이 가능할까’라는 주제가 좀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 ‘생태’를 키워드로 한 글이 없어 아쉽기도 했다. 생태는 더 이상 생명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질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이야기할 거리가 풍부한 주제다.
△장 = 뇌와 관련한 논의가 빠졌다. 뇌는 의식의 기원이고, 특히 뇌가 생각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궁금하다. 나중에 책 출간 같은 후반 작업이 있다면 보충되면 좋겠다.
△이 = 물리학 쪽에서 보면 요즘 ‘응집 물리학’이라고 부르는 ‘고체 물리학’ 부분이 더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관련 분야에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도 연이어 나오며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과학의 가장 큰 테마 중 하나인 ‘우주와 생명에 대한 기원’ 문제를 제대로 다룬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시리즈는 과학자의 전문 지식과 대중의 이해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 했다. 좋은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은.
△장 =‘과학의 대중화’라면 하향 평준화가 되기 쉬운데, 결국 대중의 과학을 보는 눈 자체를 높여줘야 한다. 그러려면 ‘쉬운 전달’을 첫 번째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 어렵냐 쉽냐, 주제가 넓냐 좁냐가 아니고 전공자가 본인의 연구를 토대로 ‘맥락’을 만들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자가 연구의 첨단에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끌어와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소중했다.
△이 = 얼마 전까지도 ‘과학의 대중화’ 혹은 ‘대중의 과학화’라는 목표 때문에 과학자들에게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무조건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과학이 인문학 못지않은 ‘교양’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일반인들도 단순히 ‘쉽게’가 아니라 ‘친절하면서도 정확하고 깊이 있게’를 요구하고 있다. 시리즈 필자들이 대부분 과학자인 동시에 대중적 활동도 많이 하는 분들이라 이런 요구에 잘 부응했다.
△송 = 이번에 과학자로서 ‘과학으로 소통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구나’라고 절감했다. 마냥 쉽게만 전달하려 하면 핵심을 놓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쉬운 전달’과 ‘핵심을 놓치지 않는 서술’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시리즈는 ‘과학의 최전선’만큼 ‘궁극의 질문’도 한 축이었다. 지금까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궁극의 질문’은 인문·철학·신학의 몫이었는데, 이제 과학 없이는 답할 수 없게 됐다. 개인적으로 가진 궁극의 질문이 있다면.
△장 = 과거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전부 플라톤이나 공자에서 시작했다면 최근엔 인간의 행동과학, 심리학, 사회생물학 등의 지식을 베이스로 두고 그 위에 덧붙이는 질문을 통해서 서술이 이뤄진다. 인문학도 ‘혼자 하는 문헌학적 방식’에서 ‘네트워크 방식’으로, ‘분리된 학문’에서 ‘통합적 학문’으로 바뀌고 있다. 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송 = 궁극의 질문을 영어로 옮기면 ‘빅 퀘스천(Big Question)’인데 과학자들은 사실 빅 퀘스천을 연구하진 않는다. 빅 퀘스천 가운데 아주 세세한 부분을 연구한다. 하지만 궁극의 질문을 이해해야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세부 내용을 알 수 있다. 요즘 개인적으로는 ‘물질과 생명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품고 있다.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보자. 컴퓨터와 뇌를 연결하는 연구가 ‘최전선’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의식이 컴퓨터를 통해 확장될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최첨단 연구들이 우리에게 “왜 답을 찾는 시도를 하지 않느냐”고 도전을 촉구하는 듯하다.
△이 = 저 역시 ‘확장’이다. 천문학에서 시작했으나 점점 다른 분야로 커진 우주생물학을 얘기하고 싶다. 우주생물학이라면 많은 이가 흥미 위주로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생각하는데 그건 0.001%도 안 된다. 우주생물학은 지구를 여러 행성 중 하나로 본다. 다른 행성과 비교하면서 다양한 물리법칙·지질구조 등을 연구하려면 물리학·천문학·지질학·대기과학 등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필요하다. 우주생물학을 통해 과학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빅 퀘스천을 찾자면 결국 기원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궁극적 질문은 결국 과학과 인문, 각 분야의 궁극적 통합으로 이어지는데.
△송 =‘의미’에 관해 전통적으로 종교나 인문학이 많은 역할을 담당해왔고 과학은 아직 충분한 대답을 주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과연 과학을 모르고 의미를 얘기할 수 있을까. 인간 존재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와 같은 과학지식에 기반하지 않는 ‘의미’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학에 구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과학을 모르고 구원에 접근할 수 없다. 다만 과학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내가 모르는 것’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리면 깨끗이 받아들인다. 겸손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 =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지 않는 게 과학자들의 기본 태도다. 문제는 과학자도 진화론적 본능이 축적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지 과학적 방식으로 훈련받은 사람일 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언제나 진실과 사실만을 추구한다’는 자기확신에 빠진 과학자들도 없지 않다. ‘과학적 사고방식’과 ‘과학자의 행위’를 분리해서 봐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과학이 오히려 송곳이 돼 다른 사람을 찌를 수도 있어 염려된다. 그런 면에서 과학자들이 예전보다 훨씬 더 인문학적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 = 학자들 가운데 ‘인문학은 쉽게 말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문학 역시 과학처럼 오랜 기간 인간다움에 대한 가치를 축적해온 역사가 있다.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상대 분야에 대한 겸손한 태도가 더 필요하다.
―제언이 있다면.
△이 = 이번 시리즈는 일반인을 고려해 일부 타협한 부분이 있다. 다음엔 과학자들의 세계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끌고 와 밀어붙여도 되지 않을까 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의 전거’가 되는 기획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송 = 과학자들이 다른 학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학만으로는 ‘질문을 검증하는 방법’을 온전히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가 만나서 생기는 질문들, 앞서 언급한 인간의 확장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해 깊이 논의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장 = 과학적 사고가 사람들의 ‘표준적 사고’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AI, 인간과 기계의 관계, 기후위기, 감염병 팬데믹, 바이러스는 왜 인간을 감염시키고 왜 신종 감염병이 자꾸 나타나는지, 이런 것들은 자연과학적 베이스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적어도 과학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인간의 미래를 고민할 때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할 작업이다.
정리 =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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