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된 작품은 ‘수지’와 ‘나뭇잎 사이로’, 그리고 ‘없는 의자’와 ‘나주에 대하여’였다. 먼저 ‘수지’. 이 작품의 주인공을 한동안 잊을 순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어느 땐 에너지가 폭발했고, 어느 땐 혼란스러웠으며, 또 때때로 안쓰러웠다. 말 그대로 인물 그 자체로 ‘러너스 하이’인 상태. 아쉬웠던 건 ‘나’에 대해서 말하느라 다른 등장 인물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서 하고 싶은 말 또한 자기 안에만 머무른 듯한 인상을 주었다.
‘나뭇잎 사이로’는 가장 유니크한 소설이었다. 기타를 치는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이야기. 거기에 갑을의 문제나 철거를 둘러싼 갈등 등 사회적 의제가 마치 실제 ‘나뭇잎 사이로’ 악보 코드처럼 군데군데 잔잔하지만 격렬하게 나타났다. 문장도 미학적으로 나무랄 데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소설 중반부터 등장한 ‘꼬끄’의 존재였다. 그와 주인공 ‘김’의 관계가 작위적으로 느껴졌고, 그로 인해 ‘김’이 무언가 깨닫는다는 설정 역시 무리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플롯에 대해서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본다면 더 좋은 작품으로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없는 의자’에 대해선, 먼저 이 작품 때문에 본심 시간이 예정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뜨거운 지지가 있었고, 설득이 있었고, 마지막엔 미련이 남았다. 그만큼 완성도의 측면이나 메시지의 차원에선 흠결이 없었다. 영해와 성해, 그리고 죽은 진해의 캐릭터도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처럼 생생했다. 하지만 의자가 가진 상징성이 너무 직접적이지 않으냐는 의견이 있었다. 중간 부분 등장하는 ‘우주 쓰레기’에 대한 삽화도 단점으로 지적됐다. 그 지적들이 이 작품이 지닌 미덕을 이길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선택에는 작은 영향을 발휘하고 말았다. 그러니, ‘없는 의자’의 작가는 미덕만 생각하고 가길 바란다. 지적에 지지 말고 미덕을 더 키우길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미련을 괜한 것으로 만들어주길 기다리겠다.
올해의 당선작은 ‘나주에 대하여’이다. 죽은 애인의 전 여자 친구인 ‘예나주’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게 된 ‘김단’의 이야기. 이 예외적인 상황을 예외적이지 않게 만든 것은 이 작가의 문장 덕분일 것이다. 한 사람을 세밀하게 묘사해내고 그에 따른 정서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따라간 문장들은 정확하고 또 때론 날카로웠다. 그 구체적인 문장들이 말하는바 우린 너무 많이 ‘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 누군가를 알 수 있는 방식은 늘어났지만 그로 인해 실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정작 나의 민낯뿐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나주에 대하여’가 아니고 실상 ‘김단에 대하여’가 맞다. 그 점을 작가가 밀도 높은 구성으로 끝까지 밀고 나갔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여기 함께 응모한 사람들의 몫까지 오래오래 지치지 말고 써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구효서·조경란·이기호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