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책 내는 고정일 동서문화사 대표

1·4 후퇴때 중공군 폭격으로
어머니·두 동생 죽음 지켜봐

“미군이 그때 敵 막지못했다면
아시아 전역이 공산화 됐을것
피란민 피눈물 아직 멎지않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6·25 피란민 세대의 피눈물은 아직도 멎지 않았습니다.”

4일 ‘1·4 후퇴’ 70주년을 맞아 6·25전쟁과 1·4 후퇴를 온몸으로 겪으며 당시 참혹상을 생생하게 증언한 출판계의 원로 고산 고정일(80·사진) 동서문화사 대표. 그는 “1·4 후퇴 때 중공군의 폭격에 어머니와 두 동생의 주검을 두 눈으로 지켜본 70년 전 그날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며 지난 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1951년 내 나이 열 살 때 였어요. 아버지는 제2국민병으로 참전했고, 어머니와 두 동생 등 남은 우리 네 가족은 1월 4일 서울에서 경기 화성 외갓집을 향해 피란을 시작했어요. 사흘 만에 경기 용인 새말에 도착해 한동안 머물렀는데 그곳은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30일 새벽이었어요. 중공군의 포탄이 작렬할 때마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굉음, 어마어마한 섬광이 번쩍였지요. 날이 샐 무렵, 포연이 걷히면서 숯검정처럼 그슬린 몸뚱이들이 찢긴 채 여기저기 널브러진 지옥의 아수라장이 드러났어요.”

오는 6일 심장 수술을 앞둔 그는 답변을 이어가다 호흡이 가빠지자 몇 번이나 잠시 숨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여덟 살 동생은 창자가 삐져나오고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엄마는 묵었던 집 대들보에 가슴이 짓눌린 채 숨졌고, 세 살 막내는 그 밑에 깔려 숨이 멎었습니다. 피란민 대부분이 몰살당하다시피 했지만, 운 좋게 나만 살아남았어요.”

고 대표는 6·25전쟁 발발부터 휴전협정까지의 기록들을 20여 년 동안 모아 집대성한 1276쪽 분량의 ‘한국전쟁’을 최근 탈고하고, 이달 중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6·25전쟁 관련 책이 많이 나왔지만, 진영논리를 떠나 가장 객관적인 시각에서 기록으로 남기는 게 출판 인생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으며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미완의 쉼표를 찍었다”며 “김일성은 한반도를 거덜 내고 137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1000만 이산가족을 만들어 천륜마저 끊게 만든 장본인으로 민족에게 크나큰 죄악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미군이 적을 막지 못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더라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이 공산주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6·25전쟁은 국가 존립을 위해 정부가 안보위기에 적극 대응해 늘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뒤 독립한 국가 가운데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성취한 유일한 국가라고 했다. “척박한 입지에서도 국민이 한 덩어리가 돼 이뤄낸 피와 땀의 결실이지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어릴 적 가난이 싫어 소 판 돈을 갖고 무작정 상경해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정주영 신화’가 탄생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그는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는 육당학술상·춘원문학상을 제정해 운영해 오고 있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복 7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육당과 춘원을 폄하하고 있다”며 우리의 위대한 문학적 유산은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육당과 춘원에 대한 문학상 제정 문제는 지난 2016년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한국문인협회가 두 분의 문학상 제정을 시도했다가 민족문제연구소 등 일부 진보 단체의 반대에 부닥쳐 좌절됐지요. 진보 단체들은 육당과 춘원의 친일 행적을 문제 삼았지만, 춘원과 육당을 빼놓고 어떻게 한국문학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두 분 모두 독립운동을 했고 옥살이도 했는데, 전체 업적을 난도질해선 안 됩니다. 두 분의 문학상을 제정하자, 어느 날 집 대문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문이 나붙기도 했습니다.”

동서문화사는 1956년 창립한 유서 깊은 출판사다. 청계천에서 천막 서점을 하다 열여섯 살 때 차려 올해 창립 65주년을 맞았다. 인문학으로 시작해 사회과학·예술·아동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출간해왔다. 그가 펴낸 책의 종류는 무려 5000종이 넘는다. 1969년 역사소설 ‘대망(大望)’을 비롯해 ‘딱따구리 세계아이들책’ ‘소년소녀세계명작전집 총 30권’ ‘그레이트 북스’ 등이 대박을 쳤다. 특히 대망은 한국출판사상 초유의 1000만 부 돌파로 초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6년 31권짜리 ‘한국세계대백과사전’을 출간했으나 KBS의 악의적인 오보와 포털사이트의 무단 인터넷 서비스로 부도가 났다. 두 번째 부도였다. 그러나 그는 오뚜기처럼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대하실록소설 ‘불굴 혼 박정희’, 전작 소설 ‘장진호:불과 얼음’등을 펴냈으며 동인문학상을 제정해 10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고 대표는 한국출판학술상, 한국출판문화상, 아동문예상을 수상했다.

글·사진 = 박현수기자 phs20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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