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핵심은 자유와 절제
공수처가 檢 권력 견제하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 전제돼야
여권, 조국사태 등 불리할 땐
‘프레임바꾸기 신공’으로 일관
촛불·적폐·검찰개혁 내세우며
‘대립적 대중정치’의 서막 열어
대북전단금지법도 단독처리해
표현의 자유 제약하는 ‘반민주’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우리가 과거에 노력해 만든 세상이 다시 퇴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의 정치 구도는 ‘참민주’ 대 ‘반민주’로 규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진보 대 보수라는 세 싸움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우리 사회가 자기 선호 집단과 이념에 대한 우상숭배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대립적 편 가르기를 통한 반민주적 정치행태가 등장한 뒤 매 사안 같은 방식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정권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은 검찰 개악이지만 이걸 검찰 개혁이라고 말하려다 보니 ‘민주적 통제’라는 말을 쓰고 있다”며 “현 정권 들어 이런 담론 정치는 수없이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추진했던 것과 다르다”고 했다. 조 교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서슬 퍼런 대립이 이어지던 지난달 7일,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및 직무배제 조치가 “법치주의 훼손과 민주주의 퇴행”이라고 비판한 서울대 교수 10명의 성명서 발표를 주도했다. 지난달 25일 서울대 연구실에서의 대면 인터뷰에 이어 5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성명이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왜 성명을 냈나.
“1990년대 상황을 먼저 설명해도 되겠나. 당시 서울대 선배 교수들이 사회정의실천연구모임을 만들었다. 지금처럼 진보, 보수로 갈린 모임이 아니었다. 김세균·한상진·박세일·손병현 같은 분들이 좌우 없이 권위주의 정부의 전횡을 막기 위해 모였다. 안경환 교수가 마지막 위원장, 제가 마지막 총무를 하고 모임의 문을 닫았다. YS(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사회 전체가 민주화 흐름으로 들어갔다고 판단됐던 시기다.”
―20년 만에 다시 성명을 냈는데.
“최근의 여러 상황을 보며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과거에 노력해 만들었던 세상이 다시 퇴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동료 교수도 자신의 SNS에 ‘이게 나라냐’는 글을 올렸더라. 불현듯 내가 책임을 다해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께 전화를 돌리기 시작해 비슷한 생각을 하는 10명이 모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있었고, 분명한 목소리로 공개 발언을 하는 데 저어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사람을 더 모으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세 싸움이 아닌 올바름과 그름의 문제였으니까.
―본인을 제외한 다른 9명은 왜 익명인가.
“과거엔 이름을 내걸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네가 진짜 교수냐’부터 여러 글이 몰아친다. 하하. 나 같은 사람이야 어쨌든 상관이 없지만 젊은 선생들은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학내외도 뭐랄까, 반지성주의랄까.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모든 걸 뒤덮으려는 움직임이 분명히 있다.”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걸 저어하는 분위기는 왜 생겼나. 권위주의 정부도 아니지 않나.
“오히려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땐 상당히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통제 방식이 작동했다. 반면 지금은 여러 경로를 통해 내게 비판을 넘어서는 비난이 쇄도한다. 한번 휘말리기 시작하면 평정심을 잃기 쉽다. 공식적 통제가 아닌 비공식적 통제가 심리적 부담을 가하는 것이다. 푸코의 지적처럼 자기검열을 통해 스스로 통제하게 된다. ‘반지성주의’를 말한 것도 그래서다. 다만 나로서는 조금 의외의 결과들을 얻었다. 남 칭찬에 인색한 분들까지 격려의 전화를 주셨다. 교내에도 그런 성명에 공감하는 분이 상당하다는 걸 알게 됐다.
―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을 ‘법치주의 훼손, 민주주의 퇴행’이라고 봤나. 여권에선 ‘검찰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대목 아닌가.
“검찰 개혁의 핵심은 ‘자유’와 ‘절제’다. 검찰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1998년 여야가 검찰총장을 임기제로 한다는 데 합의했다. 법 집행의 최초 단계인 검찰에서부터 정치적 중립을 세우려는 시도다. 그 이후 검찰 개혁의 주된 논의는 예산과 인사로 얽매인 법무부로부터 어떻게 독립할 것인가였다. 물론 이런 자유는 절제돼야 한다. 법 집행이 인신 구속과도 직결된 만큼 남용돼선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절제’의 논의가 엉뚱한 데로 흐르고 있다.”
“이제 ‘진보 對 보수’ 아닌 ‘참민주 對 반민주’ 로 구분해야”
與 다수 독재로 민주주의 퇴행… 역사적 지체 나타나
지금 진보라 불리는 집단, 도덕적 정당성 무시한채 우상숭배 경향
우리가 추구한 민주화 모두 허상이었다는 점 입증한 것 아닌가
교육 정책마다 ‘무상’… 정치 탈피해야 교육 세울 수 있어
―공수처를 가리킨 말인가.
“그렇다. 공수처 논의의 핵심은 ‘검찰 권력에 대한 견제’다. 그러나 그 이전에 ‘검찰의 독립’이 전제돼야 한다. 바람직한 검찰 개혁이라면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으면서 공수처의 견제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공수처가 야권의 비토권도 없이 국회를 통과해 여당 마음대로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공수처 자체가 정치적 중립성 문제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검찰이 2개가 생긴 셈이다.”
―성명에서 법치주의의 훼손을 강조했다.
“과거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검찰총장 임기를 법률에 규정했는데, 지금 무리하게 임기 중에 있는 검찰총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았나. 대통령은 절차의 공정성을 강조했지만, 법원 판단을 보면 절차와 공정이 모두 훼손됐다. 현 정부의 검찰 개혁이 검찰 개악으로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여권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대통령의 민주적 통제’라고 표현했다.
“짐작하건대 대통령과 여권은 선출된 권력인 만큼, 선출된 권력이 임명직인 검찰총장에 대해 권한을 행사하는 걸 민주적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의 핵심은 어떤 경우의 권력 전횡을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제어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권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현 집권세력은 ‘프레임’ 바꾸기 신공을 부린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국면 전환에 능하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현 정권 연루 의혹을 받는 검찰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윤 총장을 쫓아내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사태의 핵심이자 본질을 숨기는 담론 정치에 능하다”며 “이런 일들은 현 정부 들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은 ‘민주적 통제’ 외에도 검찰 개혁, 촛불 정신과 같은 표현들을 자주 사용한다.
“일종의 담론 정치다. 사실 검찰 개악인데 이걸 검찰 개혁이라고 말하려다 보니 ‘민주적 통제’라는 말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A라는 사안을 막상 A라고 말하면 너무 사태가 분명해지니까, A라고 하지 않고 미화하기 위해 포장을 한다. 현 정권 들어 이런 담론 정치는 수없이 이어졌다.”
―담론 정치의 또 다른 예는 무엇인가.
“조국 사태다. 출발점은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사실 확인과 판단,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였다. 그런데 대통령은 갑자기 ‘공정’을 강조하면서 대입 정시 확대를 추진한다. 묘하게 연결되지만 실은 담론이 치환된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에서 1차적 판단을 한 것이다. 잘못이 드러나면 그걸 바꾸거나 개선하려는 조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은 사실관계를 뛰어넘어 ‘담론의 사후처리’를 해버렸다.”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나.
“현대 민주주의 관점에선 ‘대립적 대중주의 정치’의 서막을 열었다. 사람들을 가르고 그중 한쪽 편 지지를 동력으로 삼는 포퓰리즘이다. 과거 ‘광장 정치’는 민주화 노력 속에서 탄생했는데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완전히 다른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토론과 이해 없이 자기 집단만의 주장을 한다. 학술적으로 말하면 확증편향인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는 현상이다.”
―여야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여야의 전략이 달랐다. 야당은 책임 정치의 관점에서 계속 대통령의 책임을 물었다. 반면 여당은 공정과 정의의 담론으로 전치해 ‘검찰 개혁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고 물었다. 조 전 장관 일가 의혹에 대한 사실 판단과 법적 책임 문제가 논점인데, 검찰 개혁 찬반으로 편 가르기를 했던 것이다. 이런 정치는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통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개혁과 반개혁으로 편을 갈라 권력을 유지하는 분열의 정치다.
―기존의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이 무의미해졌다.
“지금까지 진보는 도덕적 정당성을 중시했다. 그러나 지금 진보라고 불리는 집단은 도덕성·정당성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다. 자기 선호 집단과 이념에 대한 우상숭배 경향을 보인다. 대립적 편 가르기를 통한 반민주적 정치행태가 등장한 뒤 매 사안 같은 방식이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에선 공수처법이 여권 주도로 처리됐다.
“검찰에 대한 견제기구가 공수처라고 한다. 그 논리라면 공수처에 대한 견제기구, 그 견제기구에 대한 또 다른 견제기구를 계속 만들어야 한다. 단언컨대 가까운 시일 내에 틀림없이 ‘공수처 개혁’이 새로운 담론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공수처는 노무현 정권 때부터 논의된 기구였다.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공수처와 현 공수처는 완전히 다르다. 이름만 같은 기구다. 당시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 기구도 아니었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자체를 힘들게 할 우려도 적었다. 지금의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 기획 수사에 대한 우려도 남아 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법 집행에 따른 시민 권리 피해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무시되거나 생략됐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도 제대로 된 토론 절차 없이 처리됐다는 비판이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중요한 가치를 제약하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180여 석을 가진 여권 집단이 심도 있는 숙의, 협치의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다수의 독재이며 반민주적인 행태다.”
―민주주의가 퇴행했다는 뜻인가.
“우리 사회는 서구에서 200년에 걸쳐 진행한 근대화와 민주화, 산업화를 짧은 시간에 이룩했다. 우리의 강점을 살려 새로운 세계사의 주역으로 나가야 할 중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그런데 여권의 행태는 우리가 추구해 온 민주주의, 민주화가 모두 허상이었다는 점을 입증한 것 아닌가. 역사가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오히려 퇴행하는 역사적 지체가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선 ‘신적폐’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반민주주의’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정치·사회 구도를 말할 때 ‘진보 대 보수’로 흔히 나누는데 이제 대안 구도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 앞으로의 정치 구도는 ‘참민주’ 대 ‘반민주’로 규정해야 한다. 구도의 재편이 있어야 역사의 지체도 극복할 수 있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정치와 교육의 분리를 주장했다.
“교육이 정치 진영과 이념에서 벗어나 교육 본래를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 진영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도 오락가락하는 걸 수십 년간 봐 왔다. 탈정치가 안 되면 교육을 제대로 세울 수가 없다. 실제로 무상급식·무상교복 등 모든 교육 정책이 ‘무상 시리즈’가 아닌가.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의 분리를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
“교육감 선거는 구조상 정치 선거와 맞물리게 돼 있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공약을 얘기해도 ‘당신의 색깔은 뭔가’만 묻는다. 합리적인 선거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2016년 당시에는 ‘당선되면 임기를 2년 단축해서라도 정치와 교육을 분리하겠다’고 공약했다.”
―국가교육위원회를 제안한 바 있는데, 오히려 교육의 정치화를 초래할 위험은 없나.
“국가교육위는 ‘교육의 탈정치’를 고심한 결과물이다. 교육부는 단순 집행기구로 남고, 중장기적 교육정책은 국가교육위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국가교육위를 전문성 있는 사람들로 구성하고 여야 합의에 따른 국회 동의를 필수 조건으로 했다. 여야가 합의해 위원회 임기를 보장하면 교육정책도 긴 호흡을 갖게 될 것이라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여당 주도로 공수처법이 통과되는 상황을 보면 오히려 ‘교육의 정치 예속화’ 우려가 생겼다. 내가 추구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다. 지금 정치 상황에선 국가교육위에 반대한다.”
인터뷰 = 김윤희 정치부 차장 worm@munhwa.com
정리 =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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