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사 먹을 돈 없고 미신 믿어
세부 다나오서 무료진료 29년
동료선교사 유치원 받아 운영
초중고 과정 개설 교육사업도
“졸업생 돌아와 도와줄 때 보람”
“환자들이 처방전을 받아도 약 사 먹을 돈이 없고, 처방전을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미신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죠. 아직 한참 못 미치지만 제가 이태석 신부님 같은 의료 사역자가 되고, 제가 교육시킨 아이들도 동참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제10회 이태석 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간호사 노정희(55·사진) 씨는 7일 필리핀 현지 전화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지역 봉쇄로 학교 운영이 너무 힘들어 온 가족이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서 학교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지만, 이 상은 미흡한 저에게는 큰 영광이고, 새로운 힘이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산사람이태석기념사업회’는 “간호사로서 의료 활동도 뛰어나지만 학교 운영 등 교육 사업을 활발히 전개했다”며 “수십 년 동안 한 지역에서 현지인과 유대감을 형성해 복지사업을 펼친 점도 높이 평가했다”며 노 씨의 수상 배경을 밝혔다.
노 씨는 고신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부터 29년 동안이나 필리핀 세부섬 다나오 지역에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며 무료진료를 계속해 오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 선교사들의 헌신이 너무 좋아 보여 이런 활동을 하기 위해 간호사가 됐다”며 “의료봉사 중에 교육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동료 선교사의 유치원을 이어받아 운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 씨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열망을 이어주기 위해 1996년부터는 초·중·고 과정을 단계적으로 개설해 12년제 ‘호산나 학교’로 성장시켰고, 현재까지 졸업생만 500여 명에 달한다. 앞으로 간호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그는 “졸업생들이 감사를 표하고, 의료봉사에 함께 참여해 일을 도와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의사인 남편과 함께 의료봉사를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눈물겨운 사연도 많다. “약을 제대로 못 줘 애를 태울 때도 있었고, 콜라나 사이다를 많이 먹는 습관 때문에 치아가 빠진 애도 많습니다. 치과 선생님들과 의치를 해주면, 그전에 앞니가 빠져서 웃지도 못하고 우울해하던 아이들이 활짝 웃으면서 삶에 자신감을 가질 때 뿌듯함을 느끼죠.”
이 신부에 대해 그는 “‘울지마 톤즈’ 영화를 보고 울면서 감동을 받았다는 시어머니가 저의 수상 소식에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셨다”며 “제가 다닌 대학이 이 신부님의 집과 가깝고 오빠와 동갑이어서 친근감을 느꼈는데, 이 신부님과 같은 희망을 계속 품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석 봉사상은 남수단 톤즈에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다 숨진 부산 출신 이 신부를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해 제정됐다. 13일 시상식에 노 씨는 코로나19로 참석하지 못해 비대면 시상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 = 김기현 기자 ant735@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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