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정치 상황 알 수 있고, 압도적 크기 실물이 오롯이 전해져 가치 높아”
‘구미 대둔사 경장’, ‘상주 남장사 괘불도·복장유물’은 보물로 지정 예고
조선 숙종에게 신하 412명이 충성을 맹세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20공신회맹축 - 보사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가 국보가 된다. 불교 경전을 보관한 ‘구미 대둔사 경장(龜尾 大芚寺 經欌)’과 불화와 함께 복장낭(腹藏囊)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尙州 南長寺 靈山會 掛佛圖) 및 복장유물(腹藏遺物)’은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6일 “실물과 관련 기록이 완전히 남아 있고 25m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춘 조선왕실의 문서인 보물 제1513호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과 ‘구미 대둔사 경장’을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20공신회맹축 - 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숙종 6)에 열린 왕실 의식인 ‘회맹제(會盟祭·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기록한 문서이다. 이 의식에는 개국공신(開國功臣·1392)부터 보사공신(保社功臣·1680)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참석대상인 489명 중 연로하거나 상(喪)을 당한 사람 등을 빼고 412명이 참석했다.
이 회맹 문서는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復勳都監)에서 제작했다. 회맹제가 거행된 시기와 회맹축을 만든 시기가 15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여러 정치적 변동 탓이었다. 당시 남인(南人)과 더불어 정치 중심세력 중 하나였던 서인(西人)은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을 계기로 집권해 공신이 되었으나,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공신으로서 지위가 박탈되었다. 이후 서인은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다시 집권하면서 공신 지위를 회복했다. 이때 1~3등까지 총 6명(김만기, 김석주, 이입신, 남두북, 정원로, 박빈)에게 보사공신 칭호가 내려졌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회맹축은 숙종 연간 공신들의 지위 부여와 박탈, 회복 등 정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실물로서 오래전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1680년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會盟文·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역대 공신들과 그 후손들을 포함해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會盟錄), 종묘에 올리는 축문(祝文)과 제문(祭文)으로 구성되었다.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추었다.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어람용(御覽用) 문서답게 매우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인상을 준다. 조밀하게 짠 옅은 황비단 위에 붉은 선을 가로 세로로 치고 그 안에 단정한 글씨로 써내려갔다. 가로 약 25m에 달하는 긴 문서의 양 끝은 붉은색과 파란색 비단을 덧대고 위아래를 옥(玉)으로 장식한 축으로 마무리했다. 이 회맹축은 제작 과정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관련 기록인 ‘녹훈도감의궤(錄勳都監儀軌)’가 함께 전해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공신회맹제가 있을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10년까지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다. 1646년(인조 24)과 1694년(숙종 20) 제작된 회맹축, 1728년(영조 4) 분무공신(奮武功臣) 녹훈 때의 회맹축이 그것이다. 이 중 영조 때의 실물은 알려지지 않았고, 인조 때의 ‘20공신회맹축-영국공신녹훈후(二十功臣會盟軸-寧國功臣錄勳後·보물 제1512호 )’는 국새가 날인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어람용이면서 형식과 내용이 완전한 형태로 전래된 것은 ‘20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이 회맹축은 17세기 후반 숙종 대 정쟁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서도 역사·학술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또한 “왕실유물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제작되어 조선 후기 왕실 공예품의 백미(白眉)로서 예술성 또한 우수하다”고 국보 지정예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에 새롭게 보물로 지정 예고된 ‘구미 대둔사 경장’은 1630년(인조 8)에 조성된 것이다. 조선 시대 불교 목공예품 중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파악된 매우 희귀한 사례다. 경장으로서는 국보 제328호 ‘예천 용문사 대장전(醴泉 龍門寺 大藏殿)과 윤장대(輪藏臺)’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것이다. 왼쪽 경장의 뒷면과 밑면에 제작 시기와 제작자, 용도 등을 두루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목공예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은 높이 11m에 이르는 대형 불화 1폭과 복장낭, 함을 포함한 복장유물로 구성되었다. 이 괘불도는 1776년(정조 1) 조선 후기 대표적 화승인 유성(有誠)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화승 23여 명이 참여하여 제작한 것으로, 18세기 후반기 불화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괘불들이 여러 번 보수를 거치는 동안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것과 달리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번에 불교문화재 3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지정 예고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친 ‘문경 봉암사 마애미륵여래좌상(聞慶 鳳巖寺 磨崖彌勒如來坐像)’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固城 玉泉寺 靈山會 掛佛圖) 및 함( 函)’ ‘미륵원 명 청동북(彌勒院 銘 金鼓)’ 등이다.
장재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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