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눈 / 박현민 글·그림 / 달그림
이 책은 제본선을 상단에 둬 위로 넘기게 돼 있다. 책을 펼치면 세로로 긴 프레임이 만들어져 눈이 내리는 모습을 나타내기 좋다. 두께가 2㎜도 넘는 표지의 한 부분을 울퉁불퉁한 집 모양으로 오려뒀다. 그 안쪽으로 그림자가 떨어지면서 눈에 파묻힌 어떤 집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공간의 깊이가 생긴다. 오린 부분이 직선이 아니어서 눈덩이의 질감이 살아난다. 눈처럼 비스듬히 내려오는 네 글자 제목 위로 하얀 눈발이 날린다. 희끗희끗 묻은 눈을 툭툭 털어주는 것처럼 손으로 만져본다. 광택이 없는 포근한 질감이다.
엄청난 눈이 내린 날의 이야기다. 털모자를 쓰고 단단히 옷을 챙겨 입은 다음 눈 세상으로 나온 두 어린이는 삽으로 눈 속에 굴을 만들기 시작한다. 삽으로 모자란 눈을 만난 어린이들은 제설차를 몰고 눈 속을 뚫고 올라간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린 것일까. 정방형의 작은 그림책이지만 크기의 상대성을 활용해 만들어낸 공간감이 대단하다. 장면을 거듭 넘길수록 폭설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가 없다.
두 어린이는 눈 치우기를 그만두고 눈 속에서 같이 놀기 시작한다. 여백은 형태가 되고 어린이들의 몸은 눈이 되고 어떤 하얀 색은 배경이며 어떤 하얀 색은 인물의 동작이 된다. 독자는 눈을 크게 뜨고 하얀 눈 속에서 하얗게 존재하는 숨겨진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 산더미 같은 눈 속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신나게 파헤치는 기분으로 읽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노란 원뿔이 나타난다. 이것은 또 무엇일까?
박 작가는 ‘공간과 스케일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이 그림책을 만들던 해에는 유난히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의 첫 그림책은 이 책이 알맞을 것 같다. ‘엄청난 눈’은 엄청난 가능성과 잠재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모든 독자가 잠재력을 마음껏 발견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46쪽, 1만9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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