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아교세포가 주된 역할한다’는 기존 정설 뒤집고 별아교세포의 시냅스 해체현상이 기억 형성에 필수적임을 확인
성장한 생체의 뇌에서도 활발하게 ‘제거 활동’… 뇌·인지과학 분야 혁신적 논문 인정받아 네이처에 실려
뇌 신경세포(뉴런·neuron)의 연결망을 신경회로(neuro circuit)라고 한다. 동물은 태어나서 뇌 신경세포망을 무작위로 형성한 뒤 성장하면서 불필요한 회로를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도로에 비유하면 전국에 일단 고속도로와 지방도로를 모두 깐 다음, 차가 덜 다니는 도로를 차례로 폐쇄하는 방식이다. 이때 신경회로를 구성하는 시냅스 중 필요 없게 된 시냅스는 미세아교세포가 먹어치운다는 것이 뇌 과학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미세아교세포보다 별아교세포가 더 결정적인 청소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별아교세포는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고 헌 시냅스를 해체하는 ‘공병(工兵)’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기억과 학습은 시냅스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무한히 되풀이한 결과물이다. 더 오래가는 강렬한 기억은 시냅스 연결망이 촘촘하게 새로 형성된 것이며, 희미하게 소멸된 지식과 경험은 해당 연결 시냅스가 제거돼 없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기억이 사라져 가는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 질환의 치료 방법을 찾는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뇌·인지과학 연구 분야에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23일 최상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논문이 실렸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은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정원석 교수 연구팀이 한국뇌연구원 박형주 박사팀과 공동으로 ‘성인의 뇌가 기억을 유지하는 방식’을 밝혔다. 뇌에서 시냅스가 제거되는 새로운 방식을 성인의 뇌에서 규명했다. 그동안 어떻게 기존의 시냅스가 사라지는지, 이렇게 사라지는 현상이 뇌의 기억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신경세포인 뉴런과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는 뇌 안에서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하는 핵심 고리다.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사용이 뜸한 기존의 시냅스는 사라지고 새로운 시냅스가 생성된다.
정 교수 연구팀은 뉴런을 둘러싸고 있는 신경교세포 중 가장 숫자가 많은 별아교세포가 뇌가 급격히 발달하는 시기에 시냅스를 제거한다는 선행 연구에 이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신경교세포는 뇌에서 뉴런을 도와 뇌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로 별아교세포, 미세아교세포, 희소돌기아교세포 등 몇 종류로 나뉜다. 현재까지는 이 세포들 중 미세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제거하는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연구팀은 성장한 생체의 뇌에서도 미세아교세포보다 별아교세포가 더 활발하게 시냅스를 제거하고 있음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형광 단백질을 이용한 획기적 분석법을 새롭게 도입해 미세아교세포를 그대로 둔 채 별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제거하지 못하도록 기능을 억제했을 때 뇌에 비정상적인 시냅스가 급증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연구 결과는 미세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제거하는 주된 세포일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뒤집고, 별아교세포에 의한 시냅스 제거 현상이 뇌 신경회로의 기능과 기억 형성에 필수적임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검증했다. 그 결과 유전자 변형을 통해 별아교세포의 시냅스 제거 작용을 억제한 생쥐에서는 불필요한 시냅스가 제거되지 않고, 새로운 시냅스가 형성되는 데도 문제가 발생했다. 뇌가 기억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인 시냅스의 제거와 형성 과정에 별아교세포가 미치는 영향이 생체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시냅스의 생성과 소멸에 특화된 연구를 진행해온 정원석 교수는 “별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제거하는 현상을 조절하게 할 수 있다면 자폐증, 조현병, 치매 등 뇌 신경질환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시냅스가 뇌 독성물질 등에 오염되면 별아교세포에 제거요청 신호(‘eat me signal’)를 보내는데, 이번에 연구한 흥분성 시냅스 제거뿐 아니라 억제성 시냅스를 제거하는 미지의 수용체 분자도 곧 확인될 전망”이라며 “별아교세포와 미세아교세포 간 상호관계도 좀 더 파헤치고 싶다”고 밝혔다. 정 교수 연구팀은 2017년 6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과제로 선정돼 연구 지원을 받고 있으며, 박형주 박사팀은 한국연구재단 뇌 원천기술개발사업, 한국뇌연구원 기관 고유사업 지원을 받고 있다.
■ 용어설명
신경교세포(glia) : 뇌 속에서 활동성 전위라는 전기신호에 의해 정보를 전달하는 뇌신경세포(뉴런·neuron)가 아닌 비신경세포를 말한다. 전체 뇌세포의 70∼90%를 차지할 정도로 뉴런의 5배 정도 더 많다. 별아교세포, 미세아교세포, 희소돌기아교세포, 표피세포, 슈반세포 등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별아교세포(astrocyte) : 세포체에서 뻗어 나간 가지가 별 모양을 이루고 있어 ‘성상(星狀)세포’로도 불린다. 교세포 중 가장 많은 유형이다. 뇌신경과 혈뇌장벽(BBB)을 이루는 건축재, 영양소와 신경전달물질을 나르는 운반체, 독성물질을 치우거나 수거해 재활용하는 폐기물처리장 역할을 한다. 최근 뉴런 사멸에 관여하는 중요한 기능이 속속 새로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세아교세포(microglia) : 교세포 중 크기가 가장 작아 붙은 이름. 뇌에서 면역을 담당하고, 죽은 뇌세포를 제거하거나 염증 반응에 관여한다. 신체의 백혈구 등 대식(大食)세포에서 유래된 ‘뇌 속 청소부’라 할 수 있다.
시냅스(synapse) : 뇌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접합부. 정보를 주는 뉴런(pre-synapse)의 축삭돌기와 정보를 받는 뉴런(post-synapse)의 수상돌기 사이에서 호르몬 등 화학물질이 전달되면서 뉴런 간 흥분·억제 신호를 확산시킨다.
시냅스 가소성(可塑性,platicity) : 시냅스가 사용 빈도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거나 소멸하는 등 기억과 학습의 과정에서 변화하는 성질.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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