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무시하는 사회에 고민, 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됐으면 하는 바람” 격정 토로

“법이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법을 무시하는 사회현상이 만연하는 것에 대해 판사로서 계속 지켜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현직 판사 신분이라 부담도 컸는데 이제 야인으로 돌아가 더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법원, 검찰 등 법조계 관련 사회이슈에 대해 거침없는 소신으로 비판을 해왔던 김태규(54·사법연수원 28기)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냈다. 그는 15일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현재 시국의 특정사안 때문은 아니고 3, 4년 동안 누적된 개인적, 심리적 고민과 피로감 때문일 뿐”이라며 소회를 담담히 밝혔다. 사퇴 이유에 대해 처음에는 “이유가 많지만, 또 이유가 많은 것은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선문답’처럼 질문을 피해갔다. 그러나 그는 말문이 트이자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격정적인 토로가 이어졌다.

김 부장판사는 “현재 나라, 정부, 사회가 법을 무시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법을 잘 지키고, 사법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돼야 국가시스템도 유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속칭 ‘정치 판사’들을 강력히 비판했다.

“정부나 정권은 정치적 조직체이니 일부 여론에 따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문제는 법원 안에 있죠. 법원 안에서 법을 수호하는 것보다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입니다. 이전에도 조금씩 느껴왔지만 2018년 법관 탄핵 관련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을 계기로 일부 판사들에 대해 3, 4년 전부터 너무 화가 나서 SNS에 사안마다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판사라는 분들의 비상식적 행동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들에 대해 “‘친정부적’이라는 판사 직함을 걸지만 특정 진영의 전위대, 홍위병 노릇을 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화가 계속 쌓이다 보니 글도 심하게 쓰고, 잔소리를 너무 많이 하게 됐다며 심경을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이런 환경 속에서 몇 년 전부터 여러 번 사직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제는 판사를 하고 싶은 구심력보다 누적되는 실망과 회의에 대한 원심력이 더 세져서 그만두게 됐다”며 “판사라는 직업 자체는 너무 좋아해서 그만두면 미련도 많이 남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대법원 등 법원 전체 조직에는 여전히 감사를 느끼고 있고, 퇴직과도 전혀 관계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야인으로 돌아가면 자유롭게 글도 쓰고, 제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마음껏 비판도 하면서 살고 싶다”며 웃음을 짓기도 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부산이나 울산에서 법인보다는 개인 단독사무실을 열어 변호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연세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다 2006년 판사로 임용됐다.

그는 최근 김학의 출금 논란에 ‘미친 짓… 엄중수사해야’, 지난달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집행정지와 관련 여권의 재판부 압박에 대해서는 ‘검사가 말 안 들으면 검찰개혁, 판사가 말 안 들으면 사법개혁… 겁박하지 말라’, 지난해 정부의 대북전단살포 처벌방침 및 ‘역사왜곡금지법’ 추진에는 ‘표현의 자유가 신음하고 있다’, 2018년 전국법관대표회에서는 ‘전국법관 탄핵회의를 탄핵하라’는 등의 글을 올렸다.

부산=김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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