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통영 ‘남해의 봄날’ 정은영·고성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
서울 떠나 지역에서 9년·4년… 폐업위기 넘기며 정체성 정립
주민들과 소통하며 ‘느낌’가득… 현지 강점 살린 책 꾸준히 팔려
‘통영백미’(남해의 봄날)와 ‘동쪽의 밥상’(온다프레스)은 언뜻 지역의 식문화를 소개하는 수많은 책 중 하나처럼 보인다. 아니다. 그렇게 흔한 책이. 탄생지는 경남 통영과 강원 고성. 두 책은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만들어졌다. 저자들 역시 토박이. 수십 년 살며 쌓인 지식과 추억이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최근 개성과 취향이 있는 작은 서점이 여행명소가 될 만큼 인기인데, 이 ‘동네 책방’을 빛내주는 건 결국 남다른 책일 터. 그 서가를 채워줄 ‘동네 출판사’에 주목할 때다. 생활권 소비 등 로컬화가 세계적 추세인데, 책의 미래도 어쩌면 ‘로컬’에 있을지 모른다. 서울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연고 없는 통영과 고성에 자리 잡은 지 9년, 4년. 통영백미와 동쪽의 밥상에 대해, 이들보다 더 잘 아는 ‘책쟁이’가 있을까.
이제 ‘전국구’라 해도 과장이 아닌 두 출판사의 정은영·박대우 대표에게 물었다. 지금, 그곳에서 무얼 ‘보고’ 있는지. 박 대표는 “‘남해의 봄날’이 롤 모델”이라 했고, 정 대표는 “아, 그러면 돈 못 벌 텐데”라며 웃었다.

◇남해의 봄날 정은영 대표…“문자 한 통이면, 1시간에 100명 모으는 북 토크, 서울에서도 못 따라 해요.”=내년이면 통영에 온 지 벌써 10년. 남해의 봄날은 이제 ‘전설’ 같은 존재다. 대도시를 떠나 자신만의 속도로 살고 싶은 이에게, 또 취향대로 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이 모두에게 정 대표는 ‘앞선’ 사람이다. 실제로 이주, 출판사 창업 등 관련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처음 5, 6년 동안은 해마다 문 닫을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살면서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출판사 정체성도 찾고…. 이제 겨우 숨통이 좀 트였어요.”
‘남해의 봄날’의 대표 책은 BBC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정 대표가 ‘마지막’이라 생각한 순간 빵 터진 히트작이다. 또, 40대 여성의 일과 일상, 그리고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마녀 체력’도 화제였다.
이제 책을 낼 때마다 메이저 출판사급 주목을 받는다. 모든 책이 소중하지만, 정 대표는 로컬북스에 더 애착이 간단다. 지역 출판사가 해야 할 일,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잘 팔리기까지 하니.
“이슈 중심의 책은 우선 주목을 받죠. 한데, 많은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내기 때문에 생명이 짧아요. 로컬북스는 천천히 오래 팔려요. 가랑비에 옷 젖듯, 나중에 ‘어머 이렇게나 팔렸어?’ 하게 되죠.”
신간 ‘통영백미’는 벌써 21번째 선보이는 지역책. 이상희 작가가 40여 년 통영의 시장과 구석구석을 다니며 기록한 글과 사진이, 통영 하면 굴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외지인들의 식감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 대표는 “음식은 전라도가 최고라 생각했는데 와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며 “통영 음식이 굉장히 다양하고 독특하다. 그 뿌리를 찾는 책을 더 내고 싶다”고 했다.

책과 통영 멸치, 아귀포 등을 함께 묶은 ‘책+로컬푸드’상품과 책 제목을 모른 채 받아 보는 ‘책바다봄(받아봄)’ 꾸러미도 인기다.
자사 책뿐만 아니라 타 지역 작은 출판사의 책도 담는 게 특징이다. 대전의 ‘이유출판사’, 하동의 ‘상추쌈출판사’ 등의 책이 호응을 얻었다. 남는 것 없이, 오로지 협력과 상생, 그리고 독자를 위한 서비스다.
함께 운영하는 ‘봄날의 책방’도 자랑거리. 이미 통영 명소다. “회원들에게 문자를 넣으면, 1시간 만에 북 토크 참가자 100명도 거뜬히 모아요. 사람 많이 사는 서울에서는 열심히 해도 50명이 어려웠어요. 다들 너무 바쁘거든요.” 저자-출판-서점-독자로 이어지는 끈끈한 연대를 이야기하며 정 대표는 뿌듯해했다.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제 서울말씨를 놀리는 지역민들과 살아요…이 독특함을 계속 책으로 끌어내고 싶어요.”=2017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내려간 강원 고성. 큰 계획은 없었다. 그러니, 출판사를 차릴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박 대표는 “한때는 이곳 주민 80% 이상이 피란민이었다고 한다”며 “결국 다들 이주민이란 이야기인데, 그래서인지 텃세나 배척은 한 번도 겪지 못했다”고 했다. “내 귀엔 북한말 같은 사투리를 쓰시는 분들이 제 서울말을 재밌어하시더라고요. 이런 데서 뭔가 나올 것만 같았어요.” ‘책쟁이’ 본능이 되살아났고, 그 ‘느낌’을 살려 한 권 두 권 책을 내기 시작했다.
온다프레스의 대표 책이라고 하면 단연 ‘온다 씨의 강원도’. 박 대표의 정착기이면서, 강원 지역 이주민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는 책은 지역과 작은 출판사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이번에 낸 ‘동쪽의 밥상’은 그 존재가치를 더욱 높인 책. 속초에서 나고 자라, 지역지 기자로 일한 엄경선 작가는 동쪽에 산 자만이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이웃집의 밥상 풍경, 혀끝에 남아 있는 과거의 맛 등을 더듬는다. 또, 이를 동해안 명태가 거의 사라지고, 오징어가 30년 동안 10분의 1로 줄어든 지금의 세태와 비교한다. 솜씨 좋은 편집자인 박 대표를 만나 탄생한 수작이다.
이 밖에 고성 말씨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한 ‘북한 여행 회화’도 꾸준히 팔린다. 아직 갈 수 없는 북한을 ‘상상 여행’하며 북한말을 흥미롭게 푼 책이다. “로컬 출판사의 강점이 드러나는 책을 일 년에 한두 권은 꼭 내고 싶어요. 지역색을 억지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살면서 배우고, 발견한 후에 말이에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