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강창일 일본주재 대사 부임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문 대통령의 바람대로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최근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우리 법원의 판결에 일본은 더욱더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사법부의 판결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상황이라 한·일의 감정 대립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한·일 관계를 배타적 민족주의보다는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국제정치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 오는 20일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국제연대에 한·일은 협력을 요구받을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2013년 12월 부통령 때에도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공조와 한·일 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바이든은 중국의 도전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국과 함께 군사적 억제, 인권과 민주주의를 통한 국제 규범을 중시한다. 이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한·미·일 협력을 강조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일 양국의 행태는 협력과는 거리가 멀다. 한·일 정부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도 과거사 프레임에 매몰돼 국익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한국은 지소미아 파기 카드로 맞서 상호 발목을 잡은 것이다.
최근 한·일 갈등의 내면에는 상대를 굴복시켜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려는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가 깔려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수출규제는 일본이 우위에 있다는 민족적 자신감의 발로이며, 상생 협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도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을 보면 일본의 오만함은 여전하다. 문 정부도 ‘죽창가’를 올리면서 반일 감정을 자극한 점에는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남북관계 개선에 치우쳐 일본을 ‘방해자’로 보면서 일본과의 실질적 협력은 등한시한 측면이 있다. 양국 정부가 상호 배타적 민족주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불신을 가중시킨 측면이 있다.
이제 이러한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 미·중 대립이 심해지면서 각국의 합종연횡이 빈번한 최근 국제정치 상황에서 한·일 양국의 이익은 수렴하는 측면이 많다. 미·중으로부터 자국의 편에 서기를 강요받는 현 상황에서는 중견국의 역할을 확대하고 강대국 정치의 시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협력은 필수다. 한·일 양국이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해 강대국의 자의적 강권 질서에 반대하고, 자유무역 질서의 확산을 주장하는 중추적 동반자로서 협력한다면 서로 국익을 키울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일 협력은 양국 정부가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에서 벗어나 투 트랙 접근(과거사와 경제·안보 협력의 분리)을 실천하는 데서 강화될 수 있다. 양국 정부 모두 과거사 문제(강제징용·위안부)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면서 투 트랙 접근은 말잔치로 끝났다. 지금이라도 양국 정부가 투 트랙 접근의 원칙으로 돌아가 상대에 대한 전략적 위상을 재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은 당장의 과거사 현안보다는 갈등 관리를 우선하면서 협력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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