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고기가 댕댕댕 / 유미정 그림 / 웅진주니어

불교와 물고기는 이렇게 여러모로 가깝다. 절에서는 살아 있는 동물을 붙잡아 기르지 못하게 돼 있는데 연못에 물고기를 기르는 것은 허락된다. 포항의 오어사(吾魚寺)에는 원효대사와 혜공대사가 물고기의 생사를 두고 법력을 겨루며 ‘살아난 물고기가 내 물고기’임을 주장한 일화가 전해진다. 불교에서 물고기가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일은 해탈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고기가 댕댕댕’은 어느 작은 절에 사는 풍경 속 물고기의 모험을 다룬 그림책이다. 투명한 물빛의 절제된 이미지지만 볼수록 의미가 풍성한 책이다. 제목 글자와 본문의 문장은 세로쓰기로 배열돼 있다. 동양의 언어문화권이 오래도록 간직해온 세로쓰기 전통은 추녀에 매달린 풍경의 수직과 어울리면서 전체적으로는 가로로 전개되는 이미지의 흐름을 선명하게 가른다. 이 세로쓰기 문장들은 물고기가 겪는 모험의 해설자면서 독자에게는 세상의 이치를 돌아보게 하는 화두가 된다. 은빛으로 코팅된 표지의 선은 높은 산사의 누각에 앉아 바라보는 눈 덮인 산봉우리 같기도 하고 바람의 길 같기도 하다. 부처님에게 씩씩하게 안녕을 고하고 절을 떠난 작은 물고기는 곰도 만나고 산토끼도 만난다. 지리산 어디쯤일까 상상해본다. 가다가 칼날 같은 비바람을 만나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에서는 숨이 멎을 것 같다. 그러나 마침내 비는 그치고 물고기는 살아나며 모든 것은 고요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림책에서 동양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양식적으로는 세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뒤 병풍처럼 가로로 이어 붙이는 전통이 먼저 떠오른다. 서사적으로는 목적을 찾고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원처럼 둥근 이야기가 동양의 사유 전통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림책의 동양적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형식과 내용의 면에서 아름답게 증명하는 작품이다. 비대면 시대의 어수선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어준다. 64쪽, 1만3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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