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어느 날, 청어와 꽁치가 너무 많이 잡혔다. 남은 것의 내장을 떼어내고 살창 곁에 걸어놓으니 얼고 녹고를 반복하면서 적당하게 마른다. 마른 그것을 손질해 먹으니 특별한 맛이 난다. 그렇게 건조 방법과 먹는 방법이 퍼져 나가지만 아직 이름이 없다. 이쯤에 글깨나 아는 선비가 등장해야 한다. 어부들이 생선의 눈을 꿰어 말리는 것을 보고 눈을 뚫어 말린 고기라는 뜻의 ‘관목어(貫目魚)’라 이름 짓는다.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자를 가져다 붙이는 이런 식의 이름 유래 설명은 반드시 의심해 봐야 한다. 왜 굳이 잔인하게 눈을 꿰어 말려야 하는가? 왜 굳이 한자로 지은 이름이어야 하는가? 애초에 ‘관목’과 비슷한 발음의 고유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자로 기록해야 하니 소리와 뜻이 비슷하게 통할 만한 한자를 찾고 이야기도 덧붙이다 보니 이리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관목’을 고집하고 싶으면 ‘관목이’라고 불렀다고 봐야 한다. 삼숙이나 심퉁이처럼 물고기 이름에 ‘이’가 붙는 것은 자연스럽다. ‘보기 싫다’가 ‘뵈기 싫다’가 되고 현실 발음은 ‘베기 싫다’로 하니 ‘관목이’가 ‘관?이’가 되고 다시 ‘관메기’가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판매’를 빨리 발음하면 ‘팜매’가 되니, ‘괌메기’도 이상할 것이 없다. ‘ㅁ’이 겹치는 것이 못마땅하니 하나를 떼면 ‘과메기’가 된다.

이리저리 엮어서 늘어놓는 설명이 과메기 만드는 과정만큼이나 복잡하다. 굳이 이렇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것이 맞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과메기를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면 그 맛이 더 고소해진다. 냉장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굳이 어렵게 말리지 않아도 싱싱한 상태로 구워 먹을 수 있는데 굳이 과메기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음식은 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니 맛의 말과 말의 맛을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음식의 맛을 돋우는 길이기도 하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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