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에 대해, 우리 사회 은폐된 언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짧은 소설 ‘그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얻어낸 것’(2020년 10월 5일자 12면)으로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새로운 일상의 탄생’ 시리즈의 문을 열었던 이기호(사진) 작가는 이번 연재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 작가는 “어떤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는 늘 그 ‘사건’에 대해서만 집착하는데, 이번 시리즈를 통해서 ‘사건’ 이전의 징후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생각할 수 있었다”고 했다.
‘팬데믹’이라는 사건 이전의 징후는 어떤 것일까. 이 작가가 시리즈의 프롤로그 격으로 쓴 소설 속 ‘철곤 씨’가 한 예다. 이 작가는 그를 “팬데믹 이전부터 팬데믹 상황이었던 인물”이라며 “재난은 늘 그런 친구에게 더 험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했다. 철곤 씨는 퀵서비스 일을 해보려고 중고 스쿠터를 샀다가 사고가 난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학습지 교사를 하는 아내는 코로나 감염을 걱정해 한 번도 오지 않는다. 퇴원 후 일거리가 없는 남자는 베란다에서 벼를 기르다 아내에게 야단을 맞고, 거실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던 아들의 웹캠 속에 등장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 작가가 프롤로그를 쓴 건 지난해 10월. 지금은 어떨까. “철곤 씨는 자기 세계 안으로 더 침잠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지난가을에 비해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그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변화인 거 같아요. 철곤 씨는 계속 베란다에 머물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시리즈는 작가와 학자들이 번갈아 글을 연재하며 시대를 성찰했다. 이 작가는 “소설은 현실에 비해 조금 늦게 도착한다. 사실의 영역이 좀 더 확고하게 만들어진 다음에 문학의 개입이 시작된다. 지금은 논픽션의 시대인 거 같다”고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실들을 정확하고 냉철하게 기록해두는 게 먼저일 거 같습니다. 문학은 그 뒤에 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소설들이 지금까지 나오는 것처럼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문화일보·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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