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애국·혁신’ 강조했던 鄭 명예회장의 경영철학
녹슨 초조기 1대로 사업 시작
자산 10兆 대기업으로 성장
한평생 기술자립·국산화 매진
맏형 故정주영 회장 가장 존경
창업에 나선 순간부터 62년간 사업 외길만 매진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도전 △애국 △혁신 등 3가지로 압축된다. 재계 관계자들은 1일 “산업보국(産業報國)을 앞세우고 끝없는 변혁을 추구한 정 명예회장의 리더십 덕에 KCC가 글로벌 건축자재 및 첨단소재 화학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21살 위 맏형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가장 존경했고, 정주영 명예회장도 자신과 기질이 닮은 막내를 특히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에 따르면, 정상영 명예회장은 22세 때인 1958년 독자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큰형이 뒷바라지를 해주겠다며 외국 유학을 가도 된다고 했지만, 이를 마다하고 자립의 길을 택했다. 이에 정주영 명예회장은 “뜻이 정 그렇다면 네 사업을 해봐라. 기왕이면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업이 좋겠다”며 직접 회사 이름을 ‘금강(金剛)’으로 지어줬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그해 ‘금강스레트공업주식회사’를 출범시켰다. 자산이라고는 녹슨 슬레이트 초조기(抄操機) 1대와 직원 7명이 전부였다. 앞에는 한국스레트 등 강력한 선발업체가 즐비했다. 그러나 20대 청년 기업가는 경쟁을 겁내지 않았다. 이런 도전정신으로 그는 KCC를 임직원 5000여 명, 매출 약 4조 원, 자산 10조 원 이상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업하는 막내에게 당부한 것은 산업보국 정신이었다. 이를 받들어 정상영 명예회장은 ‘안으로는 튼튼한 회사로 키우고, 밖으로는 산업보국을 실천한다’를 창업정신으로 삼았다. 그는 이 두 가지가 하나로 통한다고 믿었다. 튼튼한 회사는 이익을 창출해 고용을 늘리고 성실히 세금을 내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다는 것이었다. 또 한 축은 ‘기술보국(技術報國)’이었다. 그는 기업의 기술력 역시 국가의 자산이라고 믿었다. 이런 정 명예회장의 철학은 1979년 금강 중앙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다.
특히 KCC 성장의 핵심 동력은 연구·개발(R&D)을 앞세운 정상영 명예회장의 혁신 경영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기술 자립화·국산화로 외국 업체와 견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KCC는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를 먼지·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봉지재(EMC) 양산에 성공했다. 1996년엔 수용성 자동차 도료 분야에서 독자기술을 개발했다. 2003년에는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모노머)를 독자 생산, 한국을 세계 7번째 실리콘 제조기술 보유국으로 올려놨다. 정 명예회장은 ‘사람이 곧 기업’이라는 인식을 갖고 인재경영에도 주력했다. 새로운 지식이 담긴 서적은 꼭 임직원들이 읽어보게 했다. 현장 실습교육과 사외연수, 해외연수도 독려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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