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계기로 ‘동물권’ 철학적 논의 활발
2012년 ‘동물해방’ 번역되며
유기문제 등 동물권 인식 확산
2019년 발생 코로나 이후엔
인간 - 동물 관계 자체 재조명
야생 파괴·공장식 축산 ‘자성’
학계·활동가 모두 논의 참여
“지구는 생명체 공동의 공간
동물과 경계짓기→ 관계맺기로”
다른 동물이나 자연이 고통받으면 인간도 고통받는다는 깨달음이 ‘경계짓기’에서 ‘관계맺기’로 사유의 전환을 낳고 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이 과정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상아탑과 일선 현장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계간지 등에서 특집 기획을 다루고, 단행본 출간도 이어지고 있다.
◇인간과 동물, ‘위계’에서 ‘얽힘’으로 = 한국 사회에서 동물 권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대략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1975년 출간돼 서구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원제 Animal Liberation)’이 번역 출간된 게 2012년이었다. 반려동물이 크게 늘면서 유기 동물에 대한 관심도 확산됐다.
동물 및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계기는 코로나19 사태다. 무분별한 야생 파괴와 공장식 축산 등 인간의 탐욕이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재앙을 불러왔다는 반성은 반려동물·유기동물뿐 아니라 야생과 공장식 축산 농장, 동물원, 동물보호소 등에 있는 동물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들 모두 인간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에도 그동안 주목받지 못해 온 존재다. 1일 출간된 ‘동물을 위해 책을 읽습니다’(책공장더불어)의 저자 김보경은 “우리 사회가 ‘개를 살 때 코가 촉촉한 개를 고른다’라고 말하는 책에서 동물복지와 동물권을 다루는 책을 읽는 사회로 옮겨가기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인간·동물 관계 재설정의 핵심은 ‘경계짓기에서 관계맺기로’ ‘위계(hierarchy)에서 얽힘(entanglement)으로’라는 표현으로 집약된다. 남성, 백인, 비장애인, 이성애자 등을 우월한 존재로 둔 채 나머지는 타자화하고 착취하고 혐오했던 과거의 사고방식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인간과 동물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하나로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는 얽힌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동신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최근 ‘인간·동물 연구 네트워크’가 펴낸 ‘관계와 경계’(포도밭)에서 “만일 코로나19가 정말로 이전과 다른 ‘뉴노멀’ 시대를 가져온다면, 그 안엔 아마도 인간중심주의적인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라는 어려운 요구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문·영역 장벽 허무는 컬래버레이션 = 인간·동물 간 장벽 허물기는 방법론 면에서 또 다른 장벽을 허무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구별 짓기에서 벗어나 학문 전공자와 현장 전문가, 활동가 등이 공동 작업을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찾는다. 위에서 언급된 단행본 ‘관계와 경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문학자와 문화인류학자, 영장류학자, 동물원 수의사, 수의학자, 질병생태학자, 사회학자, 국제정치학자, 생태·환경운동가 등이 4차례에 걸친 온라인 세미나를 거쳐 공저자로 참여했다. 앞서 인문잡지 ‘한편’ 4호(민음사), 문학잡지 ‘문학3’ 11호(창비) 등은 관련 주제를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인간·동물 네트워크 연구책임자인 이동신 교수는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논의가 직접적으로 동물을 접하는 영역에서만 이뤄져서는 안 되며,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에, 학제간 연구뿐 아니라 학계와 현장의 교류가 지속돼야 한다는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동 작업이다 보니 주제를 다루는 폭은 넓고 깊이는 깊다. 인류학자 김정미는 뜻하지 않게 입양하게 된 파랑새 ‘짹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느낀 긴장과 기쁨을 생생하게 전했다. 짹이 입양이 반생명적이고 폭력적인 게 아닐까 고민을 거듭하는가 하면, 어린 새가 하나의 인격으로 자리매김하는 경험도 했다.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는 한 서식지에 사는 한 종의 영역이 그곳에 사는 수많은 다른 종의 행동 영역과 중첩되고, 이들 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비경쟁 관계라는 데 주목한다. 이는 “지구가 공동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대전제로 보다 생태적 문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명백한 시대적 요구”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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