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체크리스트’를 가장한 현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철퇴를 내렸다. 한 치의 자의도 발붙일 틈이 없는 정교한 논증으로 정권의 ‘내 편 심기 직권남용’ 범죄에 정의의 칼을 내리쳤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것이다. 현 정권 장관 구속 1호의 불명예다. 또한, 함께 기소된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겐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지만, 윗선을 분명히 암시했다.
2018년 김태우 전 수사관이 위 의혹을 처음 폭로했을 때 청와대는 “통상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한 체크리스트”라며 “현 정권은 사찰의 DNA 자체가 없다”고 딱 잡아뗐었다. 나아가 공익신고자를 매도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청와대는 이 사건을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재판부의 설명 자료 어디에도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참으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견강부회다. 사찰 DNA, 내로남불 DNA에 이어 철면피 DNA까지 발현하는가.
임기가 남은 기관장의 사표를 강요하고 표적 감사를 해서 찍어내는 것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블랙리스트인가. 법원이 ‘이전 정부에서 정권이 바뀌었을 때 일부 기관장이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 사건과 같이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사표 징구 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가. 판결문도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가 보다.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국민과 억울한 피해자들 앞에 석고대죄하고 전 정권과 똑같은 기준에 따라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블랙리스트로 전 정권을 혹독하게 단죄한 현 정권이 더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가중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제 이 사건은 두 방향으로 수사가 확대돼야 한다. 먼저, 환경부 외에 다른 부처는 과연 유사한 불법행위가 없었는가 하는 문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는 빙산의 일각일 개연성이 짙다. 법무부와 국가보훈처, 그리고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에서도 ‘사퇴 종용’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지 않았는가.
다음은, 윗선 수사다. 김 전 장관은 인사권은 자신이 아니라 청와대가 행사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산하기관 임원 교체 계획’ ‘교체 진행 상황’ 같은 문건을 청와대와 환경부가 수시로 주고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환경부는 청와대 내정 인사의 합격을 위해 자기소개서와 직무계획서를 대신 써주고 면접 점수를 ‘100점’으로 고치기까지 했다. 정권이 전방위로,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당시 수사팀은 정치판사의 영장기각과 청와대의 집요한 수사방해에 막혀 청와대 압수수색도 못 하고 되레 학살당했다. 지금이라도 당시 인사수석 조현옥, 민정수석 조국, 비서실장 임종석, 필요하다면 대통령까지 성역없이 수사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의 비례는 법의 대원칙이다.
이 사건 당시 조국 수석은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블랙리스트를 강력히 부인하며 “책략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참으로 ‘조국스러운’ 말이다. 청와대는 이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윤석열 검찰의 신속하고 철저한 총체적·전면적 수사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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