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박소연에게

결혼과 동시에 현모양처를 꿈꾸며 내 아이들만 잘 가르쳐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큰아들이 일곱 살 되던 해에 다섯 살 딸아이까지 데리고 다시 교사 생활을 하게 됐다. 아침에 잠이 덜 깬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입혀 함께 출근하면 엄마가 아닌 교사의 역할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행여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거나 오해를 살까 걱정돼 출근 전에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엄마는 너희들 엄마가 아니라 선생님이야. 절대 엄마라고 하면 안 돼! 알았지?”

아이들은 매일 등원과 동시에 엄마를 빼앗겼다. 큰아이는 담임교사가 된 엄마 덕에 칭찬보다는 야단맞는 일이 많아졌다. 친구가 잘못해도 야단을 맞고, 자신이 잘못하면 배로 야단을 맞으며 동네북이 됐다. 다행히 큰아이는 ‘아슈라 백작’처럼 변하는 엄마 모습에 그럭저럭 적응해 가고 있었다.

문제는 다섯 살 둘째였다. 엄마를 친구들과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던 딸아이는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엄마가 있는 오빠 반 창가를 서성이며 엄마를 훔쳐보기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굳은살이 박이도록 손가락을 빨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시끄러운 마음속을 잠재우기도 했다. 아이들이 모두 하원하고 나면 딸아이는 우리 반 교실 문을 빼꼼히 열고 조용히 물어본다.

“선생니∼∼임 이제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오?”

“어, 이젠 엄마라고 불러도 돼.”

그 한마디를 기다려온 아이는 그제야 엄마를 독차지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로는 누구에게도 엄마의 곁을 내주지 않겠다는 비장한 목소리로 묻고 또 물었다.

“선생님, 지금은 엄마지요? 선생님 아니지요?”

그러던 딸이 어느새 훌쩍 자라 엄마와 같은 길을 가려 했다.

“왜 굳이 유아교육과를 가려고 해? 유치원 교사가 겉으론 좋아 보이지만 너무 힘든 일이야.”

“내 적성에 맞아. 그러면서 엄마는 그걸 왜 했어?”

“힘들어도 아이들과 있는 게 좋고 보람 있으니까.”

“나도 그래. 그래서 하려는 거야.”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유치원 교사가 됐다. 자신에게 돌아올 사랑을 떼어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 주던 엄마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교사의 역할을 배우고 익혔던 것 같다. 수업준비와 행사준비 등으로 늦은 밤까지 야근을 밥 먹듯 하니 피곤이 누적돼 코 밑에 포진이 생기고 입안이 다 헐어도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 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많은 업무로, 복잡 미묘한 관계로 힘들어할 때 저러다 지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아침이면 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딸! 수고해. 바쁘고 힘들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

파김치가 돼 돌아온 저녁에도 어김없이 반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며 귀여운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문제 상황에 놓인 아이가 걱정돼 마음 쓰는 딸의 모습에서 젊은 날 내 모습을 발견한다.

딸! 언젠가는 네 모습을 보고 또 그 길을 가겠노라 고집 피우는 네 딸에게 너 또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소연 선생님,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엄마 조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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