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희(1938∼2018)

시골집에서 늙은 여인은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다. 혼자 살아 생활이 간소했다. 방에는 물이 담긴 커다란 깡통에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시커먼 물이 고인 그 낯설었던 깡통 하나가 그녀를 기억할 때마다 뒤따라 온다. 외로움, 적막함, 까마득한 쓸쓸함…. 그녀는 컴컴한 밤뿐인 시골집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을 말없이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언청이였다. 입술이나 입천장이 갈라져 태어나는 구순구개열. 간단한 수술로 치료가 된다지만, 20년 전 그때까지 그녀는 언청이로 살다가 3년 전 경남 사천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그 갈라진 입술로 살다 돌아가셨다. “내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겠니?”라고 말하곤 했던, 옛날 집 흙벽같이 아련한 이가 바로 내 작은고모다. 고모는 친오빠를 누구보다 좋아했다. 고모의 아들이 사고를 칠 때마다 뒷수습에 아버지의 가난한 가계는 휘어졌지만, 미워하지 않고 늘 가엽게 여겼다. 건강했던 아버지는 기침을 달고 살던 작은고모보다 먼저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얼마 안 되는 재산 때문에 분쟁이 벌어졌다. 작은고모 탓은 아니었다.

소식이 끊긴 건 그즈음이었다. 어머니에게 고모의 소식을 물어도 시원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 멀리 갔다는 말만 맴돌았다. 그리고 6년 전,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주할 무렵 고모가 사천에 살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탈 많았던 고모의 아들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나 아이처럼 변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는 부산에 와서도 고모를 찾지 않았다. 그것은 내 잘못이었다. 부계의 가난과 악착같은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서둘러 꺼버리는 것처럼 그것은 내게 통감이 아닌 통증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화천에 살고 계신 큰고모에게 작은고모가 사천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큰고모는 눈물만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건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3년 전 사촌누이에게서 작은고모가 임종을 앞뒀다는 소식이 왔다.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전해졌다. 임종이 급박해서야 전해진 뒤늦은 소식은 황망하고 원망스러웠지만, 부산에서 사천까지 서둘러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나도 모를 눈물이 떨어졌다. 지난날들이 스쳐 갔다.

사천의 한 병원에 도착했을 때 고모는 이미 숨을 거두신 후였다. 방금 임종하셨다고 목사님이 말했다. 그 곁에서 한참을 울고 나서 “고모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말을 전했다. 아마도 힘없고 소용없는 말이었을 것이다.

작은고모의 얼굴은 백지장 같았고 벌겋게 갈라졌던 입술도 가라앉아 있었다. 고모의 아들, 사촌 형은 우는 법을 잊었는지 천진한 아이의 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사천’ 하고 부르면 그곳은 너무 멀고 너무 안타깝고 이제는 닿지 못할 적막과 회한이 돼 사무치게 돌아온다.

멀리 있는 조카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