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브뤼노 라투르 지음│박범순 옮김│이음

과학과 기술, 근대성, 생태 위기 등을 가로지르며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해온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사진)는 우리 시대를 ‘신기후체제’(New Clamatic Regime)라고 칭한다. ‘신기후체제’라는 명명에서 자연스럽게 생태위기, 기후재난을 떠올리지만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이라는 근대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하이브리드에 주목한 학자답게 사회와 따로 떨어진 기후위기만을 말하지 않는다. ‘신기후체제’는 기후 변화와 생태위기, 1980년대 이후 탈규제, 복지국가 해체, 악몽이 된 세계화 그리고 심화 되고 있는 불평등이 연결돼 만든 하나의 체제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지난 50년 가까이 글로벌과 로컬의 양극단, 진보와 보수 양극단이 벌인 정치 구조의 결과물로 보다 가깝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엘리트들은 위험에 무지했거나 알면서도 혼자 살아남기 위해 위기를 오히려 부인했다는 것이다. 신기후체제의 위험은 트럼프 시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를 경악과 반성에 빠트린 팬데믹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여기서 책은 빌 게이츠의 화제작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같은 책과는 갈라진다. 게이츠가 기후재앙을 피하는 방법으로 탄소 제로 사회 등을 제시하는 데 비해 라투르는 실질적 정책이나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지금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정치적 맥락과 그 역사를 추적하고, 철학적인 틀, 미래를 향해갈 태도, 지향,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를 손에 쥐여 준다.

이 지도의 근거는 저자의 핵심 사상인 ‘행위자-연결망 이론(ANT·Actor-Network Theory)’이다. 인간과 비인간, 주체와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자연도 하나의 행위자로 보는 이론이다. 인간만으로 구성된 사회와 비인간만으로 이뤄진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자는 그 연장 선상에서 지구는 인간을 위해 자원을 공급하는 ‘환경’이 아니라 세계의 운명에 직접 관여하는 ‘정치적 행위자’이며, 인간 역시 이 지구에 속한 여러 생명 행위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인간이 지구를 위기로 몰고 간다면 지구 역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대응행위를 할 것이며, 인간이 조절한다면 지구 역시 재차 조정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희망했다. 이것이 라투르가 말하는 우리 시대 공통의 지향점이다. 제목이 말하듯 우리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이 땅에 착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168쪽, 1만80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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