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파문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유임’이 직접적 계기가 됐지만, 본질은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친정권 코드 검찰의 상징으로 부상했고, 여러 사건의 수사 대상으로도 전락한 이 지검장 교체는 당연한 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물론 서울중앙지검 검사·간부들도 대체로 그런 입장이며, 신 수석도 같은 소신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일요일에 작전하듯 발표했고, 문 대통령도 일부 ‘패싱’ 당했을 수 있다는 정황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안팎의 얘기는 일맥상통한다. 박 장관이 문 대통령 사전 재가가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했고, 사후 승인을 받았다는 줄거리다. 신 수석은 그런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문 대통령에게 요구했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자 사의를 밝혔다는 내용까지 보도됐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과정에는 함구 중이다. 실제로 청와대 당국자는 지난 17일 “결론적으로 법무부 장관 안이 조율이 덜 된 상태에서 보고가 되고 발표가 된 것”이라고 발표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에 대한 박 장관의 ‘패싱’은 두 경우로 가정할 수 있다. 첫째, 박 장관이 발표 전까지의 비공식 조율을 통해 문 대통령 의중에 따른 인사안을 만들었고, 신 수석의 반대가 뻔한 상황에서 일단 이를 발표해 기정사실화하고 절차의 결함은 그 뒤에 수습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실제로 박 장관 인사안이 내용과 절차에서 모두 문 대통령의 최종 결심이 없는 상태에서 발표됐을 가능성이다.

일단 첫째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경우, 신 수석은 완전히 배제된 셈이고, 문 대통령은 부분 배제에 해당한다. 박 장관이 나름의 판단이나 여권의 다른 ‘실세 그룹’과 논의해 권력 비리 수사를 막거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이 지검장의 유임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선(先) 기정사실화, 후(後) 승인’을 도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대통령의 재가 이전에, 청와대 표현대로 ‘조율이 덜 된 상태에서’ 발표됐다면, 국정(國政) 시스템의 붕괴이고 문 대통령 말기 국정 문란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야당 대표이던 문 대통령은 당시 김영한 민정수석의 사표에 대해 “국가 기강이 쑥대밭이 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파동의 전말을 소상히 국민 앞에 설명할 책임이 있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접근하면서 이른바 ‘민주주의 4.0 연구원’멤버들에 휘둘리기 시작했다는 분석과 정황이 뚜렷해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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