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퇴 파동은 국정 주도권이 대통령에서 여당 강경파로 넘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공사가 진행 중인 광화문 북쪽으로 청와대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김동훈 기자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퇴 파동은 국정 주도권이 대통령에서 여당 강경파로 넘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공사가 진행 중인 광화문 북쪽으로 청와대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김동훈 기자

■ 신현수 사퇴 파동 관전법

신현수 사퇴 파동, 국정 주도권이 대통령에서 ‘친문 하나회’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 것…임기 말 레임덕 심화
文, ‘검찰개혁’ ‘4차 재난 지원금’ 등 강경 그룹에 끌려가…권세가들의 전권 행사, 조선조 ‘세도정치’ 빼닮아


검찰 인사에 대한 반발로 사의를 밝혔다가 복귀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파동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번 파동은 법무장관-검찰총장-민정수석 간 얽히고설킨 협력과 갈등구조를 넘어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실세 권력자들 사이의 역(力)관계를 드러내 준다.

한마디로 이번 파동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포함한 통치행위의 주도권이 이 시대 권세가인 ‘친문 하나회’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특정 가문과 파벌이 임금을 수렴청정하며 전권을 휘두르는 조선조 후기의 ‘ 세도정치 ’를 빼닮았다. 문 대통령을 권좌에 앉힌 강경파들이 전권을 휘두르는 건 임기 말 현상이자 태생적 한계를 지닌 권력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 신현수 사퇴 파동의 복기

사퇴 파동은 봉합됐으나 검찰 ‘기습 인사’와 문 대통령의 결재 과정을 둘러싼 주된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숙명처럼 여기는 검찰개혁과 직결된 고위직 인사를 작전 벌이듯 밀어붙인 것에 대한 국민적 궁금증에 대통령은 침묵했고, 청와대는 ‘통치행위’라며 얼버무렸고, 장관은 설명을 회피했다.

24일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회 답변과 등장인물들의 행적으로 재구성한 사퇴 파동은 이렇다.

<제청권자인 박범계 법무장관 이외의 인물이 6일 문 대통령에게 검찰 인사안을 설명했고, 대통령은 이를 승인했다. 인사 발표 전 전자결재나 하드카피 문서에 사인하는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 박 장관은 신 수석과는 사전 상의 없이 7일 기습적으로 인사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측엔 발표 2분 전에 통보됐다. 대통령의 결재는 발표 다음 날인 8일 전자결재로 이뤄졌다. 신 수석은 자신의 역할 수행에 한계를 느끼고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후 잠적했다. 나흘 뒤 신 수석은 사퇴 문제를 대통령에게 ‘일임’하고 직무에 복귀했다.>

신 수석이 사표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단 복귀한 것은 기회 요인과 위협 요인 두 측면을 모두 보여준다. 대통령의 체면을 살리고 ‘할 말은 하는’ 충신 이미지를 각인시킨 것, 검찰인사에서 권력 수사팀을 유임토록 한 것 등은 기회 요인이다. 하지만 권력의 심부에서, 특히 대통령의 복심인 민정수석이 벌인 사퇴 파동은 그만큼 권력이 취약해졌음을 노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현수 파동은 5년 전의 최재경 사례와 닮았다. 최재경은 박근혜 집권 3년 8개월이 흐른 2016년 10월 민정수석에 임명됐다가 한 차례 사의 파동을 겪은 후 12월 사퇴했다. 신현수도 문재인 집권 3년 8개월 만인 2020년 12월 말 임명된 후 두 달도 안 돼 사퇴 파동을 일으켰다.

민정수석은 청와대에서 비서실장, 정무수석과 함께 권력서열 ‘톱3’에 꼽히는 요직이다. 과거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세를 가진 민정수석의 사퇴 파동은 그것만으로도 대통령 권력의 심각한 레임덕, 즉 권력 누수를 반영한다. 그것이 신현수 사퇴 파동이 남긴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 누가 文을 수렴청정하나

검찰 인사 과정에서 인사권자인 ‘대통령 패싱’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권력 내부의 불온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이번 사건은 국정이 대통령의 의지대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대통령 권력은 촛불세력의 지배를 받는 강경파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들 강경파로부터 통치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문 정권의 통치형태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닮았다. 친문 권세가들이 나랏일을 좌지우지하는 모양새가 마치 조선 시대 특정 가문과 파벌이 군왕을 수렴청정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것과 흡사하다.

그럼 누가 청와대를 움직일까. 누가 대통령의 생각을 지배할까. 이와 관련, 대통령의 인사권과 통치행위 전반에 개입하려는 존재에 주목하게 된다. 진중권 전 교수는 24일 언론 기고에서 그 배후로 ‘조국 전 법무장관과 친문 하나회’를 지목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586 운동권 출신으로 구성된 친문 ‘부엉이모임’의 후신 ‘ 민주주의 4.0 ’을 거론하기도 한다. 이들은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이라는 대통령의 뜻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그 목적을 이뤄가는 절차와 방식, 타이밍을 독점하는 세력이다.

문 대통령은 군왕처럼 ‘군림’했지만, ‘통치’는 소수 권세가에 의해 이뤄진다. 둘 사이에 힘겨루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 대통령은 자기 결정권을 상실한 채 척신(戚臣)과 총신(寵臣)의 통치를 승인하는 조선조 철종을 연상시킨다. 신현수 사퇴 파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민정수석직을 받았지만, 정작 특정 세도가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확인하고 심한 무력감과 배반감에 사퇴 결심을 한 것이다.

◇ 세도정치와 대통령의 ‘운명’

정권 실세들이 청와대와의 구체적인 조율 없이, 혹은 대통령의 주문을 건너뛰며 일을 처리하려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문 대통령이 당에 검찰 수사권 폐지와 관련한 속도 조절 필요성을 주문했지만, 민주당 강경 그룹이 마이웨이 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문 대통령은 22일 박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수사권 개혁을 안착시키고,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유영민 비서실장은 24일 국회에서 이에 대해 “박 장관에게 속도 조절 의미로 당부한 게 맞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67년의 허송세월이 부족한가”라며 속도 조절론을 비판했고, 박주민 의원은 “(검찰개혁은) 당이 주도하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올 초 코로나 재난지원금에 대해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라고 했다가, 4차 지원금은 물론 국민위로금까지 주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선 것도 정권 실세들에게 휘둘린 경우다.

노무현 정권 시절 열린우리당 내 강경 개혁파들은 ‘대통령이 꼴 보기 싫다’며 대선을 4개월 앞둔 2007년 8월 당을 박차고 나와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집권 야당’을 차렸다. 김대중 대통령도 집권 4년 차에 당내 정풍운동에 쫓기다 임기 9개월을 남긴 2002년 5월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레임덕은 정권 말기에 어김없이 찾아온다. 더구나 권력의 태생적 한계를 지닌 대통령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임기 말이 될수록 강경파들의 국정 개입과 간섭은 더 깊고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다. 문 대통령 자신의 책 제목처럼 그건 ‘운명’이다.

전임기자·행정학 박사


■ 세줄 요약

신현수 사퇴 파동의 復棋 : 민정수석은 청와대의 요직임. 권력의 핵심이자 대통령의 복심인 신현수 수석의 사퇴 파동은 대통령의 인사권과 통치행위의 주도권이 이 시대 권세가인 ‘친문 하나회’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누가 文을 수렴청정하나 : 신현수 파동은 대한민국 국정이 文의 의지대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듦. 대통령의 고유 인사권과 통치권을 주무르는 친문 하나회 등 ‘보이지 않는 손’이 있고, 이들이 국정 전반을 좌지우지함.

세도정치와 대통령의 ‘운명’ : 지금의 정치형태는 특정 파벌이 전권을 휘두르는 조선조 ‘세도정치’를 빼닮아. 문 대통령을 권좌에 앉힌 강경파들이 전권을 휘두르는 건 레임덕 현상이자 태생적 한계를 지닌 권력의 운명임.

■ 용어 설명

‘세도정치’란 조선 후기 소수 권세가와 그 추종자들을 중심으로 나라가 운영되던 정치 형태. 국정의 정점에 있어야 할 국왕의 권력과 권위가 권신들의 간섭과 개입으로 크게 약화했다는 특징이 있음.

‘민주주의 4.0’은 여당 친문 의원 56명이 참여한 매머드 모임. 과거 ‘부엉이모임’이 친문의 보이지 않는 세력이었다면 ‘민주주의 4.0’은 당정 요직을 차지하며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
허민

허민 전임기자

문화일보 / 전임기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