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의 대한민국 외교 ‘진단과 처방’ - ③ ‘역대 최악 수렁’ 韓·日관계 해법찾기

-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 연구위원
코로나 대응·북한 문제 등 우선 협력 추진 필요성
文대통령 관계개선 의지없인 우물에서 숭늉찾는 꼴
교역갈등 현상동결… 동시행동으로 과거사 풀어야


[처방]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 연구위원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 연구위원
한·일 관계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개인 청구권을 인정한 강제징용 판결, 레이더 조사(2018년 12월 일본 방위성이 “한국 광개토대왕함이 우리 초계기에 화기관제 레이더를 조사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 갈등, 그리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카드 등으로 진흙탕 싸움이 지속되면서 한·일 대립은 심각한 상황이 됐다. 게다가 최근 위안부 판결은 한·일 간 대립을 더욱더 악화시키고 있다.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위기의식조차 보이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공이 있다’며 별다른 정치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일 관계를 북한 문제에 종속시키거나 국내정치의 유·불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져 한·일 관계 개선은 우선순위에서 도외시됐다. 오히려 한·일 관계를 관리해야 할 정부가 감정을 드러내면서 싸움을 자초했다.

문 정부의 방치에 가까운 대일정책으로 인해 한·일 관계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가해자인 일본이 한국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은 실종됐다. 게다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도 국익보다는 과거사 프레임에 매몰되는 우를 범했다. 물론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가 문제지만, 장기적이고 전략적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생각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도 책임이 있다.

앞으로 한·일 관계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문 정부는 과거사는 관리하고, 이익은 확대하며, 전략은 공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문재인 정부는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에서 벗어나 투트랙 접근(과거사와 경제·안보협력의 분리)을 실천해야 한다. 문 정부의 투트랙 접근은 말 잔치로 끝났다. 문 정부는 지소미아 파기를 대일 대항카드로 잘못 사용해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들었다.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자신의 발목을 잡으면서 국익마저 훼손시키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투트랙 정책이 실질화되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한·일 협력을 미룰 것이 아니라 한·일 협력이 필요한 부문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특히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한·일 협력은 우선적 과제다. 북한 문제에서도 한·일 양국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한·일 양국이 대북문제에서 방법론에선 차이가 있을지라도 협력을 해야 한다는 전략적 자세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조 바이든 정부가 중시하는 한·미·일 협력은 한·일 양국이 추진해야 할 과제다. 더욱이 한·일 경제 협력에서는 양국 간 대립이 있더라도 이익을 증진시켜야 함에도 구체적인 협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문 정부가 국익을 우선하는 냉철한 눈으로 상황을 살펴야 한다.

둘째 문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에 의지를 가지고 정치적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 최근 한·일 관계의 이슈들이 국내 정치화하면서 전략외교보다는 국내 정치이익에 매몰되는 경향이 많았다. 대일외교의 방향이 여론에 휩쓸리고, 여론을 추동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외교당국자들의 공간은 더욱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갖지 않는 상황에서 당국자 간 대화를 통한 성과를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꼴이다. 한·일 대화가 실질적인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문 대통령이 나서서 대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적극적 행동을 보일 필요가 있다. 우선 한·일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국장급 대화 채널보다는 청와대와 일본 관저가 직접 나서야 한다. 청와대와 일본 관저의 솔직한 대화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시작돼야 한다. 현재 한·일 양국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정상이 만나 더 이상 한·일 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한·일 관계의 악화를 막는 ‘신사협정’이 나와야 한다.

셋째 한·일 화해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도 필요하다. 한·일 양국이 과거사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는 최종적으로 택할 수 있는 카드지만, 한·일 양국의 대화와 협상이 우선 추진돼야 한다. 한·일 양국이 합의점을 도출하는 지혜와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한·일 화해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문 정부는 과거사 문제를 관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피해자들(위안부, 강제징용자)과 대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문 정부가 피해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합의를 도출할 때 한·일 화해 과정은 결실을 볼 수 있다.

문 정부의 피해자를 위한 대화 노력은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수출규제조치를 해제하고 한국은 현금화 조치를 유예한다는 현상동결이 이뤄져야 한다. 현상동결이 이뤄질 때 한·일 대립은 완화될 수 있으며 한·일 갈등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여유도 가지게 된다. 불신이 앞서는 현재 상황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동시 행동을 해야 한다. 하나의 대안으로 일본은 사죄와 반성에 대한 상징적인 조치를 만들고,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 판결 배상금을 대위변제하면서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물꼬를 트는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한·일 양국의 합의에 의한 한·일 기금이나 한국의 여야가 합의한 과거사 특별법으로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만 해결책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 한·일 관계 이해를 위한 3가지 키워드

△강제동원(징용·위안부) 판결 = 2018년 10월 한국 법원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강제징용된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이 각 1억 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애초 강제징용한 일본 기업을 지금의 일본 기업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기존 한국과 일본 법원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에 과거 청산·개별 기업의 배상 필요 불인정 등의 내용이 담긴 만큼 일본 기업과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현상동결(standstill) = 협상 시 어떤 특정한 시기 이후에는 새로운 조치를 도입하지 않기로 하는 약속이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이에 맞선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등 경제 전쟁이 본격화됐을 때 당시 미국이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를 동결하고 일정 기간 한·일 양측이 외교적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바이든 미국 정부의 중재로 특정 시점에 현상동결 합의가 다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위변제(代位辨濟) = 채권자가 가지고 있던 채권에 관한 권리가 변제자에게 이전되는 일을 뜻하는 법률 용어다. 한·일 관계에서는 우리 법원의 판단에 의해 배상 주체가 된 일본 기업이나 정부를 대신해 한·일 기본 조약에 의해 설립돼 이득을 본 우리 기업이나 정부가 대신 피해자들에게 배상해 주고 이에 대한 구상권을 일본에 청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나 기업의 자산을 강제 매각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방안이다. 강창일 주일대사 등이 이 같은 취지의 해결책을 제안한 바 있다.


韓·日 과거사 갈등, 경제·교역으로 확전…곳곳에 지뢰밭
‘바이든 시대’ 삼각 동맹 협력 강조… 양국 관계개선 압박


[진단]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가장 중요한 이웃’이던 한·일 관계는 ‘앙숙’이 됐다. 지난 3년 반의 임기 동안 한·일 관계가 긍정적이었던 순간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양국은 일단 한·일 관계 회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곳곳이 ‘지뢰밭’이라 관계 진전을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양국 정치인들이 반일(반한) 감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와중에 전략 외교는 사라지며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 최악 수렁” 한·일 관계 = 지난 1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한국을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 표현했다. 그간 한국에 대한 외교 수식어였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에서 나머지는 다 삭제한 셈이다. 한국은 최근 국방백서에서 일본을 동반자에서 ‘이웃 국가’로 바꿔 불렀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악재가 이어지며 갈등을 겪은 한·일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한·일 관계가 꼬인 것은 2015년 한·일 간 체결한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내 비판적인 여론이 일자 문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실상 합의파기 수순을 밟으면서다. 협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배제되는 등 많은 반발에 문 정부는 일본 정부 출연금으로 설립한 화해·치유재단 해산 의사를 전달해 합의를 무효화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은 약속을 안 지키는 국가’라는 반한 감정이 커졌다.

이후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와 한국 해군 구축함의 ‘레이더 논란’, 제주에서 2018년 10월 개최된 국제관함식에 참가한 일본 함정의 해상자위대기(욱일기) 게양 등을 두고 군사적·외교적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달은 것은 2018년 10월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이다.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고 우리 정부는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2019년 7월 일본은 한국에 대한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국 목록(화이트리스트)에서도 빼버렸다. 과거사 문제가 사법부 판단으로 확대되더니 경제·교역으로까지 번진 셈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맞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했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관계 개선을 언급하면서도 다자회담 등에서 마주칠 때마다 냉랭한 관계만 확인했을 뿐 실질적인 관계 개선이나 진전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올해 1월에는 우리 법원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일본 정부가 즉각 반발했다.

◇한·일 관계 다시 좋아질까 = 일단 두 나라 모두 한·일 관계가 지금처럼 가서는 안 된다는 데는 동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한·일 관계를 방치해 둔 것과 달리 지난달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동북아시아에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에 기초한 한·미·일 삼각 협력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반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악용했던 아베 전 총리가 물러나고 스가 총리가 취임한 것도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단 한국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에서의 일본의 역할 등을 감안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스가 총리 역시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한국에 적대적인 입장을 감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도쿄올림픽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미북·남북대화 재개 계기로 삼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일본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여기에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 감정의 골이 깊은 과거사 문제가 사법 재판과 결부되며 한국 정부도 쉽게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은 큰 악재다. 특히 양국 국민의 반일(반한) 정서가 워낙 공고해 두 나라 모두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 상황이다. ‘적대적 공생 관계’를 꾸려 이웃 나라에 대한 반감을 정부에 대한 지지로 활용해 온 두 나라 정치권의 책임이자 업보다.

결국 양국 관계의 미래전망은 엇갈린다. 대중 견제를 위해서도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이 절실한 미국 정부가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만큼 바닥을 찍은 두 나라의 관계가 회복할 것이라는 긍정적 관측 못지않게 근본적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완전한 복원은 어렵다는 부정적 예측이 함께 나온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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