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4·4 만세운동 때 남상락(1990년 애족장) 선생이 부인 구홍원 선생과 같이 사용한, 하얀 명주 천에 색실로 자수를 놓은 태극기. 이 자수 태극기는 국가등록문화재 386호로 등재돼 올해 3월의 독립운동가 홍보 포스터에도 반영됐다.국가보훈처 제공
충남 당진4·4 만세운동 때 남상락(1990년 애족장) 선생이 부인 구홍원 선생과 같이 사용한, 하얀 명주 천에 색실로 자수를 놓은 태극기. 이 자수 태극기는 국가등록문화재 386호로 등재돼 올해 3월의 독립운동가 홍보 포스터에도 반영됐다.국가보훈처 제공
올해 3월의 6 25전쟁영웅에 선정된 임택순 공군대위. 전투기가 피탄되자 적 대공포진지로 돌격해 호국의 별이 됐다. 국가보훈처 제공
올해 3월의 6 25전쟁영웅에 선정된 임택순 공군대위. 전투기가 피탄되자 적 대공포진지로 돌격해 호국의 별이 됐다. 국가보훈처 제공
‘3월의 독립운동가’, 충남 당진 4·4 독립만세운동 주역 ‘이인정·송재만·한운석 선생’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올해 ‘3월의 6·25전쟁 영웅’에 선정된 임택순 공군 대위를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임 대위는 6·25전쟁 중이던 1953년 3월 6일 강원 고성 월비산지구와 351고지에서 작전 수행 중 적 대공포에 피탄되자 전투기와 함께 적 대공포 진지로 돌입해 장렬히 전사했다. 임 대위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 10일 공군사관학교 1기로 졸업해 소위로 임관한 뒤 제21정찰비행대대와 제15교육비행전대에서 임무를 수행했으며, 1953년 1월 5일 강릉 제10전투비행전대로 전속돼 F-51 무스탕을 조종하며 적진을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3월 6일 임택순 중위(당시)는 동부전선의 요충지로서 2년 동안 격전이 거듭되던 고성 351고지의 방어를 돕기 위해 열두 번째 출격에 나섰다. 임 중위는 351고지의 적의 진지를 파괴하고 재차 공격을 위해 진입하던 중 적군의 대공포탄에 우측 날개가 피탄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때 지상에서 이를 지켜보던 전방공중통제관은 임 중위에게 신속히 탈출할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그대로 기수를 적진으로 향해 마지막까지 조국을 위한 충정을 바치며 그렇게 아끼던 전투기와 함께 장렬히 산화하며 호국의 별이 됐다. 공군사관학교 출신 조종사로서 최초의 전사자가 된 임택순 중위의 전공을 기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4월 20일 대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인정·송재만·한운석 올해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들은 현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정미면에서 일제에 맞서 민·관이 하나 돼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다양한 계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4·4 독립만세운동의 주역들이다. 선생들은 고종의 국장과 3·1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내려온 대호지면 유생들과 협조해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을 주도했다.

이인정 선생은 대호지면 면장으로 만세운동 준비를 전반적으로 지휘했으며, 송재만 선생은 만세운동을 위해 작성한 도로 수선 공문을 면내 8개 마을 이장 집을 직접 방문해 전했고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 내용을 안내했다. 도호의숙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한운석 선생은 만세 계획과 애국가 작사를 요청받은 후 그 자리에서 애국가를 작사하고 참여계획을 논의했다. 4월 4일 대호지면 면사무소 앞에 집합한 면민 400∼500명에게 이인정 선생은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지휘했다. 송재만 선생은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꺼냈고 애국가가 적힌 인쇄물을 배포했다. 오전 11시쯤 천의시장에 도착해 시장 일대와 천의경찰관주재소, 정미면사무소 등을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일본 경찰들에게 맞서 군중은 저항하며 돌을 던지고 일경을 구타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일경의 검거 및 탄압으로 이인정, 송재만 선생 등이 체포되는 등 1차로 17명이 검거를 당한 데 이어 군인과 경찰에 의해 200여 명 이상이 검거돼 고초를 겪었고, 그중 재판에 54명이 회부됐다. 이인정, 한운석 선생은 징역 1년, 송재만 선생은 징역 5년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인해 일제의 탄압도 극렬하여 순국 3명, 태형 88명, 불기소 65명, 면소 4명, 징역 39명 등 199명이 처벌을 받았으며, 이에 2020년까지 총 124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정부는 이인정·송재만·한운석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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