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下> 세계가 주목한 고효율 제작 생태계
왕좌의 게임 1회 제작비로
韓드라마 16부작 2편 제작
인터넷 보급률 96% 세계 1위
디즈니·애플도 韓시장 노크
웹툰·웹소설 원작 소스 탄탄
한류스타 건재… 亞 허브 우뚝
K-스토리가 최근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강력한 생태계다. 같은 수준의 작품을 훨씬 적은 제작비로 만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효율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 재편되는 플랫폼도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다. 여기에 웹툰·웹소설 등 광범위한 원작의 약진, 높은 시청자 수준은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놀라운 가성비…한류의 효율
2014년, 영국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주영한국문화원 주관으로 최초의 ‘K-드라마 위크’가 열렸다. 당시 ‘갑동이’의 권음미 작가와 BBC 드라마 ‘시크릿’ 작가 벤 오크렌트가 패널로 나와 양국의 작가 운영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크릿’ 중 1개 에피소드만을 쓴 오크렌트 작가는 권 작가가 주 2회씩 16부작을 혼자 집필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씁쓸하지만 효율에 집중하는 한국 콘텐츠 시장의 단면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한국의 콘텐츠 제작 환경은 열악하고 고되기로 유명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전까지는 밤샘 촬영이 일쑤였고, 쪽대본이 난무했다. 하지만 지독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높은 효율을 낳았다.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에도 높은 품질의 콘텐츠를 내놓으며 ‘가성비’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이같은 환경 속 단련된 제작역량이 최근 선진화된 시스템과 만나면서 새롭게 꽃 피우고 있다.
지난 2019년 공개된 ‘왕좌의 게임8’의 회당 제작비는 약 1500만 달러, 한화로 178억 원 수준이다. 이는 회당 제작비가 5억∼6억 원 수준인 국내 드라마의 30배 이상이다. ‘왕좌의 게임’ 1회 제작비로 16부작 한국 드라마 시리즈 2편을 제작할 수 있는 셈이다. ‘K-좀비’ 신드롬을 몰고 온 ‘킹덤’의 회당 제작비는 23억 원 정도. 국내 드라마 제작비 수준보다 4배 정도 높았으나 미주나 유럽 콘텐츠에 비하면 여전히 저렴한 편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에 상륙한 후 5년간 한국 콘텐츠에 총 7억 달러(약 7700억 원)를 투자해 오리지널 콘텐츠 80여 편을 제작했다. 편당 평균 96억 원쯤 투입됐다. 이는 국내 16부작 드라마의 전체 제작 비용과 비슷하다.
제작비 한계에 부딪히고 TV 준칙상 표현의 제약을 받던 크리에이터들은 넷플릭스를 만나 ‘윈윈’했다. 크리에이터들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치고, 넷플릭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투자로 K-콘텐츠의 소유권을 확보했다. ‘킹덤’의 김은희 작가는 “‘킹덤’은 잔인함과 제작비 때문에 지상파 방송이 불가능했는데 넷플릭스에서 준비하며 ‘노(No)’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한국적인 이야기를 전 세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서도 (넷플릭스는) ‘충분히 흥미가 있다’고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비용 고효율’이 한국 콘텐츠 시장의 투자 구조로 자리 잡는 건 경계해야 한다. 보다 많은 제작비를 확보해야 콘텐츠의 질을 높이며 할리우드 시장과 어깨를 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보급률 1위…OTT의 천국
넷플릭스는 2016년 출범 당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토종 콘텐츠 역량이 뛰어난 한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비롯해 드라마 ‘킹덤’, 예능 ‘범인은 바로 너’ 등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규모로 투자하며 차츰 뿌리내렸다. 올해는 디즈니플러스와 애플TV플러스 등이 한국 시장을 노크하고 웨이브, 티빙, 카카오M 등 토종 OTT들의 방어도 높아진다. 여기에 네이버, KT, 쿠팡 등이 가세한다. 그야말로 ‘OTT 춘추전국’이다.
한국이 OTT 각축장이 된 이유는 두 가지 환경 때문이다. 미국 퓨리서치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4%로 이스라엘과 호주를 제치고 세계 1위다. 인터넷 보급률 또한 96%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5세대(G) 보급률도 1위다. 이보다 비옥한 환경은 찾기 힘들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세대가 확대되고 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고화질로 콘텐츠를 즐기길 원하는데, 한국은 이런 정보기술(IT) 환경이 최적화된 나라”라며 “향후 한국은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받는 나라가 아니라 OTT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웹툰·웹소설… 광범위해진 원작
원천 소스인 웹툰·웹소설 등의 약진도 K-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들 뿐 아니라 소위 ‘슈퍼지식재산권(IP)’ 시대를 열고 있다. 이는 원소스멀티유즈(OSMU)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OSMU가 단일 콘텐츠의 성공을 기반으로 다른 영역으로의 진출을 꾀한다면 슈퍼IP는 기획 단계부터 확장성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는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동명의 웹툰으로도 소개됐다. 기존에는 유명 웹툰이나 웹소설을 드라마나 영화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슈퍼IP는 원소스에 근거해 속편이나 스핀오프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간다. 이주현 성균관대 글로벌융합학부 교수는 “크리에이터들이 웹툰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이를 성공적으로 영상화한 사례들이 한국 콘텐츠의 힘을 더욱 탄탄하게 해주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여러 사람의 참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플랫폼과 수익 시스템, 생태계는 앞으로 한층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잡으면 세계를 잡는다
2020년 넷플릭스 흥행 순위는 흥미롭다. 일본의 경우 ‘톱10’ 중에 한국 드라마가 5편이었다.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가 1, 2위였고, ‘사이코지만 괜찮아’ ‘김비서는 왜 그럴까’ 등이 포함됐다. 대만은 ‘톱10’ 중 9개, 말레이시아는 8개, 베트남은 7개가 한국 드라마였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대만·말레이시아·베트남·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한류 스타를 앞세운 한류 콘텐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음악, 영화, 드라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류 스타들이 아시아 시장 곳곳을 점령했다. 전 세계 78억 인구 중 아시아 인구는 약 45억 명으로 60%에 육박한다. 미주와 유럽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 플랫폼 가입자 수가 정체된 상황 속에서 상대적으로 스마트폰과 인터넷 보급률이 낮아 가입자가 적은 아시아 시장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다. 이 속에서 한국은 아시아의 시장성을 살피는 테스트 베드(Test Bed)이자 가장 효율적인 허브(Hub)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진용·김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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