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영의 시계는 계속 흐르고 있다. ‘소녀시대 수영’의 시계는 잠시 멈춰 있지만, ‘배우 최수영’의 시계는 오히려 더 빨라졌다. 2001년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어느덧 20년,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최근 마친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런 온’(run on·계속되다·쉬지 않고 달리다)의 제목이 유독 그에게 잘 어울리는 이유다.
최수영은 극 중 서명그룹 회장의 딸이자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 서단아 역을 맡았다. 겉으로 볼 때는 무엇 하나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룹 후계 서열에서 밀려나고 가족에게 상처 입은 인물이다. 그래서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순수함을 간직한 미대생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다.
소녀시대의 멤버 수영으로서 그의 삶은 화려했다. 쉼 없이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관객의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배우로서 최수영은 감우성과 호흡을 맞춘 MBC 드라마이자 첫 주연작인 ‘내 생애 봄날’ 등을 비롯해 외면보다는 내면에 비중을 두는 역할을 더 자주 맡았다. 그런 그에게 ‘런 온’의 서단아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차가운 인상의 배우와 어울릴 것 같았다. 그동안 제가 보여주지 않았던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를 제안해주신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작가님께서 내 작품을 빼놓지 않고 봐주셨고, 내가 연기할 때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도 알아주셨다. 배우 수영에 관심이 있다고 느껴서 감동받았다.”
최수영의 연기는 안정적이었다. 서단아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소위 ‘엄친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패션에 신경을 쓰면서도,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통해 전문가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했니?’라는 말투는 까칠한 젊은 리더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다. 과연 실제 최수영의 모습과는 얼마나 닮았을까?
“단아와 최수영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어 하고 고군분투하는 점에서 70% 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단아는 일이 잘 안 되면 분노하지만 나는 잘 참는 편이다. 때로는 ‘떠오르는 대로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단아를 연기하면서 어느 정도 그런 갈증을 해소한 것 같다.”
최수영은 ‘런 온’을 촬영하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 서단아의 모습에서 오랜 기간 그의 정체성을 지켜 온 소녀시대 멤버 수영의 모습을 엿봤기 때문이다.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항상 스스로를 향한 기준을 높여야 했던 걸그룹의 삶, 그런 삶을 십수년간 살아온 최수영의 경험은 서단아를 표현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단아가 소녀시대 같단 생각을 했다. 겉으로 볼 때는 다 주어지고,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기 위해 쫓기듯 살아야 하고, 자기관리에 힘써야 한다. 남들이 바라보는 기대치와, 자기만족의 기준이 높아서 누구보다 고군분투하며 사는 것 같았다. 소녀시대로 활동할 때가 생각나서 단아를 잘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최수영은 ‘런 온’의 여운을 즐길 틈도 없이 영화 ‘새해전야’(감독 홍지영)로 관객과 만났다. 이 영화에서는 스노보드 선수인 남자친구를 응원하는 오월 역을 맡았다. 최수영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캐릭터다. ‘런 온’의 서단아와는 결이 다른 최수영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어느덧 데뷔 20년 차에 접어든 최수영. 가수로서 정점을 찍고 배우로서도 조금씩 자신의 평균치를 끌어올리며 밑짐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그가 2021년을 맞은 마음은 어떨까?
“지금까지 마음의 문을 연 척도 해보고 닫은 척도 해보고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경험했다. 수영으로서 상처받은 경험, 상처받을까 봐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경험도 해봤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회의적인 인간 유형이 되기도 했는데, ‘런 온’ 같은 무해한 드라마를 만나서 배우로서 연예인으로서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내가 ‘기다려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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