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일화의 정치학
한국 정치사의 단일화, 선거 승리 후엔 대부분 승자독식 전락… ‘정책연합’ 통한 ‘연정’ 방식 돼야 진짜
오세훈·안철수 단일화, 보선 승리 넘어 ‘공동정부’ 운영으로 시민의 광범위한 지지 얻어 정권 독주 막아야
◇역사 속 단일화의 유형
단일화에는 ‘선거동맹’ 방식, 선거 후 정책연합과 공동정부 구성으로까지 나아가는 ‘연합정부(연정)’ 방식, 아예 복수의 정당이 합쳐지는 ‘합당’ 방식 등이 있다. 물론 이들이 결합한 방식도 있었지만, 한국 정치는 대부분 ‘선거동맹’에서 그치기 일쑤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첫 단일화 사례는 1990년 정초에 발표한 3당 합당이다.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쳐져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했다. 덕분에 13대 총선의 여소야대가 여대야소로 바뀌었고 정치지형이 호남 대 비(非)호남의 구도가 되면서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가 본격화됐다. 3당 합당으로 김영삼(YS)은 대통령에 당선돼 권력 획득이라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과연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997년 김대중(DJ)과 김종필(JP) 사이의 DJP 연합은 ‘선거동맹’과 ‘연정’이 결합한 경우였다. 호남·진보를 상징하는 DJ와 충청·보수를 대표하는 JP가 연대했다는 점에서 ‘선거동맹’이었고, 집권 후 내각의 ‘5 대 5’ 배분 약속이 지켜졌다는 점에서 ‘연정’이었다. 하지만 공동정권 후반기 들어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연정은 깨졌다.
이후에도 선거를 앞두고 단일화가 꾸준히 시도됐는데 대부분 ‘선거동맹’ 형태였다. 2002년 대선 직전 노무현과 정몽준 사이에서 짧은 시기의 선거동맹과 파기 사례가 있었고, 2011년 서울시장 보선을 앞두고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아름다운 양보’를 통해 사실상의 ‘선거동맹’을 이룬 적이 있다.
◇단일화의 진정한 의미
여기서 단일화의 본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단일화와 관련된 ‘조작적 정의’는 없으나, 복수(複數)의 정치적 주체들이 선거 전에 힘을 합치고 선거 승리 후엔 각자의 정체성을 갖고 다양한 정책을 조화시켜 나간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즉 단일화가 진정한 뜻을 갖기 위해서는 선거 승리 이후 ‘정책연합’을 통한 권력 공유, 즉 사실상의 ‘연정’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내각제를 택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선거 후 연정을 형성해 ‘합의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다당제를 기반으로 한 정치구조에서 한 정당이 의회 의석의 절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각의 배분 비율과 참여 정당들의 상이한 정책을 정부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연정이 가능해진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연정 가능성을 결정하는 요인은 ‘정당의 이념’과 ‘연합의 규모’다. 참여 정당 사이의 이념적 거리가 좁을수록 가능성이 커지고, 참여한 정당 의석수의 합이 절반을 약간 넘는 정도의 규모일 때 연정이 구성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단 연정 구성에 성공했더라도 참여 정당 간에 타협한 정책이 수용되지 않으면 연정은 해체된다.
하지만 한국의 대통령·단체장 선거에서 단일화는 대부분 선거동맹만 꾀한다. 눈앞의 당선이 중요하기 때문에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상대에게 파격적으로 양보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단 당선된 다음에는 양보의 정신과 약속은 잘 이행되지 않는다. 한국 정치에서 선거동맹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단일화는 정치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단일화도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선거 전에만 전술적으로 힘을 합치고 선거 후엔 그 정신이 사라지는 모습은 승자독식이라는 대통령제 하의, 특히 한국적 풍토의 독특한 정치문화다.
◇野 단일화의 현주소
앞의 논의를 4·7 서울시장 보선에 적용해보자. 야권 단일화 추진은 나경원·오세훈·조은희·오신환 등 후보들이 각축을 벌여온 국민의힘과 안철수 후보의 국민의당 사이에 집권세력 심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때마침 이들 대부분은 ‘선거동맹’을 넘어 서울시 ‘공동정부’ 운영까지 내걸었다. 사실상 ‘연정’에 준하는 ‘통치동맹’ 방식의 단일화를 천명한 것이다.
문제는 야권 단일화 전에는 경선 설문 문항 마련 등 룰 세팅에 집중하느라 집권 후 정책연합에 대해 논의할 겨를이 없다는 점이다. 또 단일화 이후에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본 선거를 치를 때까지는 내부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정책 흥정과 타협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중 한 명이 야권 후보가 돼 본 선거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이들 사이에서 정책 타협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만약 안철수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고 기호 4번 국민의당 소속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경우는 어떤가. 국민의힘은 당장 내년 6월 1일 지방선거를 겨냥한 차기 서울시장 만들기에 나설 것이다. 즉 국민의힘은 안철수 당선과 동시에 그를 견제해야 한다.
반대로 오세훈이 최종적인 야권 단일 후보가 될 때는 어떨까. 본 선거 때까지는 안철수의 도움을 받으려 하겠지만, 선거 후에는 안철수를 공동정부의 정책 파트너로 안고 가기엔 부담스러울 것이다. 내년 3월 대선에서 안철수가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야권 단일화는 선거 승리의 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물론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야권의 단일화 과정에서 합의한 모든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단일화의 궁극적 목적
야권 단일화는 서울시장 당선만을 목적으로 한 ‘선거동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궁극적으로는 정권의 독주를 막기 위한 정책연합과 ‘통치동맹’으로 나아갈 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향후 야권의 협상 과정에서 세세한 룰 미팅에 몰두하는 나머지 단일화의 진정한 의미를 복원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세줄 요약
역사 속 단일화 유형 : 단일화에는 ‘선거동맹’ 방식, ‘연정’ 방식, ‘합당’ 방식 등이 있음. 한국 정치사에서 후보 단일화는 극적인 정치국면의 변화를 가져오곤 했음. 하지만 대부분 승리만을 위한 ‘선거동맹’ 형태에 그침.
단일화의 진정한 의미 : 단일화는 복수의 정치적 주체가 선거동맹으로 승리한 후 ‘정책연합’과 권력공유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음. 선거 전에만 힘을 합치고 선거 후엔 흐지부지되는 건 한국적 승자독식 풍토의 독특한 정치문화임.
野 단일화 현주소와 전망 : 현재의 야권 단일화 과정은 보선 승리를 위한 수단화 가능성이 큼. 하지만 정책연합으로 시민에게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문재인 정권의 독주를 막는 ‘통치동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커짐.
■ 용어 설명
‘연정’이란 일반적으로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내각제 권력구조에서 실행되는 통치동맹의 한 형태. 연합정부(coalition government) 혹은 연립내각(combined cabinet) 등으로 표시됨.
‘합의제 민주주의’란 정치학자 A 레이파트가 제시한 두 가지 정치 유형 중 하나. 그는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유형을 ‘다수제(majoritarian) 민주주의’와 ‘합의제(consensus) 민주주의’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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