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핑크 블루 | 윤정미 사진·소이언 글 | 우리학교

2009년,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계단 복도에 걸린 커다란 사진 작품을 처음 보았던 날이 생생히 기억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핑크색 물건이 빼곡하게 놓인 사이에 여자 어린이가 파묻힌 것처럼 앉아 있는 그 이미지는 한참 멈추어 서 있었어야 할 정도로 강렬했다.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많은 질문이 떠올랐고 자료를 찾아보았다. 2007년 미국의 사진잡지 팝포토닷컴에서 올해의 사진집으로 선정했던 윤정미의 ‘Pink & Blue’, 그중 한 작품이었다.

젠더와 컬러코드를 다룬 윤 작가의 사진 작품에 소이언 작가가 글을 쓴 ‘안녕? 나의 핑크 블루’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 11년의 작업이 담긴 책이다. 그 사이에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많은 연구 논문이 발표됐지만 윤 작가의 작업만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시대의 변화를 관통하는 작업은 드물다. 핑크와 블루의 수난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인공이 파란색 비행복을 입을 때 여성 캐릭터인 루피는 핑크색 세일러복을 입고 여성을 비하하는 저열한 혐오 표현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겨울왕국’의 공주 엘사의 카리스마 넘치는 파란색 드레스는 여성 리더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달라진 성 역할 고정관념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상어 가족’의 엄마 상어는 여전히 핑크색이며 아빠 상어의 뒤를 따른다.

이 책은 변화한 것 같으면서도 여전한, 변화할 것 같으면서도 집요한 성역할 이분법을 향해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 독자는 책 안에 실린 수십 장의 사진을 만나고 간결하게 접근하는 글을 읽으면서 이 세상의 색을 성별에 따라 둘로 나눈다는 것이 몹시 어리석고 차별적인 분류였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색으로 상징되는 젠더의 감옥에 관한 시각적 보고서로도 보인다. 수감자는 관습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그 색 안에 파묻혀 자란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색으로만 가두어 둘 수 없는 자신의 세계를 찾아나간다. ‘지우와 지우의 무지개색 물건들’이나 ‘정미와 정미의 검은색 물건들’은 핑크와 블루를 뚫고 나오는 장면들이다. 글로 느끼는 변화에 비하면 시각은 한참 지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변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감은 어떤 글을 읽을 때보다 이미지 속에서 더 크게 체감한다. “누구도 우리에게 색을 정해줄 수 없지요”라는 선언은 자주 듣던 말이지만 이미지와 함께 한결 큰 중량감으로 다가온다. 흔들림 없이 철저하게 미세한 세계의 움직임을 증언해온 윤정미 작가의 작업에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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