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환익 前 한전 사장·現 녹현리서치 회장
“재생에너지 확대”소신이지만
現정부 ‘조급한 탈원전’ 비판
“文정부 에너지정책 갈등 키워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의문”
“에너지도 부동산처럼 복잡해
화이부동의 에너지 믹스 필요”
“신한울 3·4호기 반드시 건설
대국민 의견수렴 과정은 필수”
“이런 게 한두 개만 더 터져도 우리 경제의 물꼬가 될 수 있을 텐데….”
지난 4일 조환익(71·전 한국전력공사 사장) 녹현리서치 회장은 서울 서초구 집무실에서 기자를 보자마자 7년 전 사진 한 장을 쓱 내밀었다. 조 회장이 한전 사장이던 2014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을 점검하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바라카 원전 수출의 경제적 효과만 75조 원입니다. 자동차 320만 대, 휴대전화 7300만 개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습니다. 4차 재난지원금이 20조 원이라는데 비교도 안 되죠.”
우리나라는 2009년 프랑스, 일본 등 쟁쟁한 선진국을 모두 제치고 한국형 원전(APR1400) 4기 건설사업을 수주해 2016년 운영권까지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이후 수출 실적은 전무(全無)하다. “참 안타깝습니다. 내가 2017년 12월 한전이 영국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거 보고 사표를 냈었는데, 영국 원전도 흐지부지되고 성공한 수출이 없네요.”
조 회장은 “원전을 조금 줄이더라도 재생에너지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탈(脫)원전’이라는 지시적·경로설정형 용어를 써가며 비현실적으로 무리수를 두는 데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0월 4번째 저서 ‘공직의 문’을 펴낸 조 회장을 만나 에너지 문제와 공직에 대해 물었다. 그는 “부동산만큼이나 복잡한 데다 기후변화·탄소중립이라는 거대 변수까지 맞닥뜨린 에너지 문제를 화이부동(和而不同·서로 다르지만 조화를 이루는 것)의 자세로 풀어가야 한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공직과 관련한 책을 출간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요새 하도 여론이 공직자들을 매도하고, 내가 보기에도 답답한 면이 많아 공직에 대해 한번 글을 써보기로 했다. 가만히 보니 나밖에 쓸 사람이 없었다. 공무원, 공공기관, 공기업이란 3대 부문을 모두 거친 데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까지 접촉해본 사람이 흔치 않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공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아직도 사람들이 공직에 대해 ‘관료주의’ ‘보신주의’ ‘철밥통’이란 선입관이 있는 것 같더라.”
―후배 공무원들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가혹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부당한 지시는 거부했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이들이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나.
“(씁쓸하게 웃으며) 잔인한 시대의 잔인한 질문이다. 수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아 이들을 감싸줄 수는 없지만 희생됐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시대의 희생자 같다. 개인적으로는 참 똑똑하고 인성도 괜찮은 후배들이다.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선처되길 바란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 10개월 에너지 정책을 평가한다면.
“향후 역사가 평가할 거다. 빈곤층 배려 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지 않았나 싶다. 모든 게 잘못됐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갈등을 심화시킨 데 대해서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에너지 정책 입안자들이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얘기인가.
“형식적 토론은 많다. 만났다 하면 회의다. 하지만 막말로 계급장 떼고 하는 밤샘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회가 경직돼 있는데 나중에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와는 또 어떻게 융합할 건가. 갈등을 근원적인 수준까지 풀 수는 없겠지만, 서로 조금씩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 공조직에 대해 ‘정권의 영혼 없는 기술자’라고 얘기하는데 사실은 ‘균형추’다.”
―이번 정부 들어 에너지 이슈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텍사스 대정전 사태를 계기로 기후위기, 전력 공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에너지 문제는 부동산처럼 복잡계다. 풍선처럼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경제·사회를 모두 아우르는 갈등 이슈다. 에너지로 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라는 변수까지 생겼다. 개인적으로 원전과 석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성 외에 환경성과 안전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내 기본철학이다. 그렇다고 해도 50년에 걸쳐 탈원전을 한다더니 너무 조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용어만 봐도 그렇다. 탈원전이라니. 지시적이고 경로설정형 용어 아닌가. 초기 탈원전의 이념적 방향은 비현실적인 무리수였다. 그러다 보니 정책 입안자들의 노력도 탈원전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n차 방정식처럼 풀어야 한다. 각 변수가 최고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차선책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전기요금은 1원도 올리면 안 되고, 탄소는 중립으로 가야 하고, 공기업은 적자를 내면 안 되면서 에너지 업계는 발전해야 하고…. 다 맞출 변수는 없다. 만족도를 낮추면서 아울러야 한다. 화이부동의 에너지 믹스, 에너지 균형화가 필요하다.”
―원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원전이 원래 건설부터 폐기물까지 갈등 덩어리다. 원전 기저부하 내 비중을 낮출 필요가 있다. 그런 이유로 원전을 계속 늘리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원전 제로(0)가 가능하겠나. 향후 소형모듈원전(SMR)이 들어오면 원전에 포함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핵융합도 마찬가지다. 에너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와서 탈원전이네, 원전 제로네 하는 것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러는 거다. 한국의 APR1400은 압도적 기술우위에 있다. 2024년이면 신고리 5, 6호기가 (건설이) 끝나는데 그 후에 원전을 적용할 수가 없다. 인력도 기술도 소멸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게 해줘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원전은 끝’이라고 할 수 없다.”
―원전 비중 축소 시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는 물론이고 해외 원전 수출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텐데.
“원전은 건설하는 데 10년이 걸린다. 건설비용이 1기당 최소 2조 원 이상이다. 보통 2기씩 한다. 원전을 이어가면서 APR1400도 해외에서 지어주며 기술력을 보존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 폐기물도 줄이는 등의 새 기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에너지는 명분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신한울 3, 4호기는 반드시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 대토론이나 공청회를 여는 등 사전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간헐성·고비용 같은 재생에너지의 근원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간헐성·고비용은 구조적인 문제라 완전 해결은 어렵지만 기술 혁신에 따라 좀 더 나아질 수는 있다. 일단, 포인트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이다. 지금 들불처럼 확산하고 있다. 요즘 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ESG) 경영 얘기를 많이 하는데 90%는 환경(E)에 관한 거다. 재생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 온 거다.”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하나.
“전기요금은 올라갈 수밖에 없고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전기요금을 전기세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가장 싸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국민이 어느 정도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인터뷰 = 박수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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