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다. 떨어진다. 물길 끝 폭포수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실. 국립창극단 신작 ‘나무, 물고기, 달’ 리허설에서 물고기 역을 맡은 배우 김수인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목청을 울렸다. 한구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음악감독 이자람(사진)이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움직임을 ‘완창’할 때처럼 해주세요.” 이에 김수인은 무슨 말인지 눈치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자리에 멈춰선 뒤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연습 직후 만난 이자람은 “서너 시간씩 소리에만 집중하는 완창을 하듯 몸짓을 절제해달라는 주문이었다”며 “‘하지 마세요’라는 말 대신 ‘해주세요’라는 표현으로 배우의 기를 살려주는 소통방식”이라고 했다. 음악감독 외에 작창과 작곡을 맡은 이자람은 이번 작품에선 무대에 오르지 않지만, ‘본업’이 관객 앞에 서는 소리꾼이기에 배우의 ‘마음’ 상태를 누구보다 세심히 살핀다는 얘기였다. 지난 1984년 ‘내 이름 예솔아’로 데뷔한 이자람은 소리꾼, 배우, 밴드 보컬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11∼21일 펼쳐지는 ‘나무, 물고기, 달’의 핵심 테마 역시 ‘마음’이다. 제주 구전신화 ‘원천강본풀이’, 인도 신화 ‘칼파 타루’ 등에서 영감을 얻은 이 창극은 소원을 이뤄주는 나무를 찾아가는 물고기와 사슴, 순례자의 여정을 그린다. ‘소원 나무’라는 신화적 소재를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얻으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지 질문한다.
“소원 나무를 찾아가던 순례자는 자기 안의 괴물 같은 욕심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어요. 이후 여러 소리꾼이 무대에 올라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불러요. 어수선한 죽음 뒤에 오는 깨달음의 시간을 통해 ‘소원 나무가 너의 소망을 다 들어줄 것 같지? 사실은 모든 게 네 마음에 달린 것이야’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자람은 전통적인 기승전결 방식이 아니라 나열식으로 진행되는 대본을 읽으며 ‘오즈의 마법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작품을 떠올렸다고 했다. “긴 빨랫줄이 하나 있고, 그 위에 단일한 에피소드들이 크고 작은 옷과 바지처럼 줄줄이 걸려 있는 구조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음악도 어떤 곡은 ‘클라이맥스’에 적절한 것, 어떤 곡은 ‘기능적으로 받쳐주는 노래’로 구분하지 않고 각각의 소리가 독립적인 완결성을 갖추는 데 중점을 뒀어요.”
이자람은 ‘할 말이 별로 없는 이야기’와 ‘흥미로운 이야기’에 대한 반응이 다른 사람이었다. 최근 불고 있는 ‘국악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정확히 표현하면 ‘이날치 열풍’일 뿐”이라며 “국악 전반이 대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하긴 힘들다”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 소리에 영감을 주는 ‘소설’이나 ‘서사’에 대해 질문하자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설화에 바탕한 ‘나무, 물고기, 달’ 외에 프랑스 구전동화 ‘빨간 망토’를 각색한 ‘소녀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을 재창작한 ‘이방인의 노래’ 등에 참여한 바 있다.
“나를 다른 ‘월드’로 데려가는 소설이나 동화를 보며 용기를 얻어요. 누군가의 인생을 훔쳐보며 나만 부족한 ‘좀생이’가 아니라는 걸 깨닫죠. 어떤 작품을 하든, 다른 예술이 전해준 영감을 품고 ‘솔직하고 깨끗한’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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