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소둑(1895~1989)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그제야 살아생전에 효도 못한 것을 후회한다더니 내가 그렇다. 희수(喜壽)를 지나 살 만큼 산 요즈음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는 할머니가 문득문득 생각난다. 할머니는 스물 아홉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후 한평생 자녀(1남 1녀), 친·외손주 그리고 증손자까지 지극정성으로 사랑하셨다. 정말 존경스럽기 그지없는 분이셨다.
장손자인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걸어서 20여 분 거리인 학교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따뜻한 도시락을 가져다주셨다. 점심때면 어김없이 도시락을 가슴에 품고 학교로 오시는 할머니였다.
훗날 내가 군대 생활 중 몸이 아파 수도육군병원(현대미술관 자리)에서 수술을 받고 한 달여 입원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이때도 여전하셨다. 규정상 면회가 금지된 병원에 할머니가 간식을 갖다 주셔서 동료 환자들을 놀라게 했다.
할머니는 새벽녘 후문 보초 사병을 감읍시키는 꾀를 내어 병실까지 잠입하셨다. 해도 뜨기 전 후문을 찾은 할머니는 “밤새도록 고생한 너를 보니까 병실에 있는 내 손자가 생각난다”며 눈물을 글썽였고 이에 감동한 보초병은 병실 가는 길까지 친절하게 알려 줬다. 이 사건(?)은 자칫하면 보초병이 영창에 갈 수도 있다는 부모님의 만류로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할머니의 증손자 사랑은 유별났다. 증손자가 네 살 무렵 5분 거리인 시장에 갔다가 응가가 마렵다니까 급한 김에 손바닥에 받으셨다. 그러곤 증손자를 업고 집에까지 와서 버리셨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린다.
이 증손자는 초등학교 시절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문상 온 교인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찬양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자 “나는 슬퍼서 눈물만 나는데 왜 노래를 부르냐”면서 자신은 앞으로 절대로 교회에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증손자는 미국 유학 시절 외롭고 배고플 때 교회에 가서 식사를 해결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절대로 교회 근처에 얼씬대지 않겠다는 결심을 배반(?)하지 않았다. 증조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이 증손자는 현재 부부 대학교수로 남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옆의 사진을 설명해야겠다. 작업모를 쓴 건장한 분은 현대그룹을 창립한 정주영 회장님이다. 그 옆에 우리 할머니가 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사진의 실물 크기인 브로마이드가 현재 아산병원 내 정주영 기록관 정중앙에 세워져 있다.
우리 할머니가 젊은 시절의 정 회장님을 직원으로 둔 ‘그 유명한 쌀집 할머니’다. 할머니는 건실한 정 회장님을 늘 식구처럼 따뜻하게 대했다.
세월이 흘러 공무원 생활을 도중에 끝낸 아버지가 현대건설 경리부장으로 입사했다. 정 회장님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이 사진은 1957년, 현대건설 직원들이 동구릉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 찍은 것이다. 정 회장님이 “아주머니, 이리 나오세요”라며 포즈를 취하던 장면을 중학생이었던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자택에서 치를 때였다. 조문객도 별로 없던 오후에 건장한 노신사가 찾아왔다. 이 분이 당시 재계 거물인 정 회장님이어서 깜짝 놀랐다. 문상을 한 정 회장님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잠깐 얘기하다가 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정 회장님은 다시 돌아와 “아주머니께 마지막 인사도 안 하고 갈뻔했네”라며 돌아와 작별인사를 했다.
정 회장님은 할머니의 쌀집에 근무하던 시절 변중석 여사와 결혼을 했다. 할머니가 인연을 맺어주셨다. 결혼식 날에는 눈이 무척 많이 왔다. 할머니는 정 회장님과 함께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통천까지 함께 가 결혼식에 참석하셨다는 얘기를 가끔 하셨다.
할머니와 얽힌 선글라스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溥儀) 황제가 쓰던 안경과 똑같은 것이다. 할머니의 아버지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 시절, 미관말직으로 일하셨다. 상황이 극도로 나빴던 당시 순종은 충실히 보좌한 외증조부에게 이 안경을 하사했다. 할머니는 나들이 땐 이 안경을 애용하셔서 멋쟁이 할머니로 눈길을 끌었다. 이 안경은 우리 집 가보로 간직하고 있다.
끝으로 사족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집안은 정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아버지를 비롯해 외삼촌, 동생, 그리고 내 아내까지 현대그룹에서 녹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당시 현대와 경쟁 관계였던 다른 그룹의 신문사에서 근무했다.
현대에 두 차례 입사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만두어 인생이 바뀌었다. 인생은 자의나 타의 등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다른 길을 가는 수가 많은가 보다. 할머니, 그립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민우 ㈔한국체육언론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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