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초기의 화가 염입본(閻立本)이 그린 ‘직공도(職貢圖)’. 외국 사신들이 조공물을 들여오는 풍경이다. 당나라 사람들은 화려한 이국의 호기심을 가져오는 외국 사절을 환영했고, 그런 취향은 황실과 귀족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계층과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 스며들었다. 글항아리 제공
■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에드워드 H 셰이퍼 지음│이호영 옮김│글항아리
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唐 외국인부터 수입물품 동물까지 수도 장안은 ‘해외문물’의 중심
사치의 상징이었던 양귀비는 선녀 같은 무지개 날개옷 마니아
‘수입품’이라고만 해도 어떤 아우라가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물건이 가져다주는 ‘이국적’ 향취는 분명 매력적이다. 특히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한데, 1200년 전에는 어땠을까. 기술과 관념의 한계로 ‘상상의 세계’가 훨씬 작을 수밖에 없던 시대엔 처음 보고, 처음 만져 보는 것들이 주는 정서적 힘은 어마어마했을 터.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에도 영향을 끼치며 예술, 문화 , 사회 시스템 전반에 스며들어 갔을 것이다.
책은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을 누렸던 당(唐)나라의 이국적 취향을 다룬다. 장안, 낙양 등 주요 도시의 풍경과 그 속의 물질문명을 분석하는데 사람, 가축, 야생동물, 식물에서부터 음식, 향료, 약, 옷감, 보석, 책, 음악, 종교용품에 이르기까지 당나라 사람들의 ‘모든 것’을 망라한다. 한마디로 대당제국의 이국적 수입 문화에 대한 백과사전인 셈. 저자는 당시(唐詩)의 대가이자 미국의 중국학자 에드워드 셰이퍼(1913∼1991) 교수. 1963년 출간 후 한국어 초역이 나오기까지 무려 50여 년이 걸리긴 했으나, 1200년 전 당 제국의 문화적 교류 양상과 개방적 성격, 만화경 같은 다채로움을 ‘상상’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통계나 이론 대신 고전 텍스트를 적절하게 인용한 저자의 ‘시적인’ 글쓰기. 여기에, 당의 역사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어, 종종 마주하게 되는 한반도에 관한 기록도 익숙한 사고 회로에 자극을 준다.
포도주가 든 가죽 부대를 들고 있는 외국 상인. 당시 포도라고 하면 서역의 희귀한 수입품이라는 인상이 따라다녔다.
책은 200여 개에 이르는 ‘물건’을 펼쳐 놓는다. 크게 18개 분야로 장을 나눠, 그 속에서 다시 세분화하는 식이다. 예컨대 ‘사람’ 편에서는 7∼9세기 당나라로 유입돼 이국적인 문화와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낸 비(非) 당나라인들을 전쟁 포로, 노예, 난쟁이, 볼모, 조공으로 바친 사람, 악사와 무용수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당나라가 주변을 정복해간 7세기에는 자연스럽게 전쟁 포로가 많았고, 그중엔 만주족·고구려·백제인도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황실 조상들에게 산 제물로 바쳐지거나 공노비가 돼 고된 노역생활을 해야만 했는데, 이때, 고구려나 신라의 젊은 여성은 시녀나 첩, 기생 등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런 ‘사람 목숨’도 저자는 당나라의 이국적 수입품, 즉 ‘사치품’으로 분류하는데, 두 나라가 자진(?)해서 당나라 황실에 여성들을 진상한 대목에선 아무리 천몇백 년 지난 ‘옛날이야기’라 해도 씁쓸해진다. 다만, 그때마다 태종이 했던 말들은 흥미롭다. 고구려에서 바친 2명의 아름다운 여성에 대해 태종은 “고향의 부모 형제로부터 떨어진 가련한 여인들”이라며 돌려보냈고, 신라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소녀 2명을 헌상했을 때엔 “목소리와 얼굴의 아름다움은 덕을 추구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며 거절했다. 이 시기 당나라에선, 귀족이나 일반 시민 상관없이 이국적 음악을 듣는 게 유행했고, 이국에서 온 사람들 중 가장 인기를 누리던 것도 음악가였다.
이국적 향취가 묻어나는 수입품을 소유할 기회는 일반 시민보다 귀족에게 더 많았다. 책에 양귀비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선녀를 연상시키는 무지개 날개옷, 사후 함께 매장됐다는 향낭(香囊), 두 마리의 봉황이 새겨진 비파, 그것을 연주하기 위한 대왕조개 비단실(수잠)로 만든 현 등…. 양귀비가 입었던 옷이나 사용했던 물건 등을 따라가다 보면,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던 당나라 취향의 원류를 좇는 기분이 든다. 조개의 섬유에서 짜낸 비단은 페르시아만이나 스리랑카의 진주 산업에서 파생한 천으로 보인다. 또, 중국에 어마어마한 외국 서적이 쌓이고, 개인 서재가 발달한 것도 당나라 시기다.
아시아학 저널은 이 책을 “가장 재미있게 쓰인 중국에 관한 책”이라 극찬한다. 저자가 문학 서적에서 근거를 가져왔고, 개인적 감상도 요령껏 녹아내서다. 하지만 상상과 실제를 혼동할 우려도 있다. 당나라는 평화로웠던 전반기와 시스템이 무너져가던 후반기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러면서 전해지는 ‘수입품’이 후대에 ‘그랬다더라’는 식으로 과장된 경향도 짙다. 제목도 실제 7세기에 사마르칸트 왕국에서 조공했다는 노란 복숭아에서 온 것인데, 저자는 이 사실보다는 읽는 이들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황금빛 사과를 저절로 떠올렸으면”이란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홀린’ 채 걸어 들어간 기분. 이 복숭아가 존재했다는, “황홀한” 1200년 전 무릉도원 속으로 말이다. 696쪽, 3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