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여 베이징(北京) 특파원 생활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2기와 함께 시작됐다. 2017년 11월 베이징 외곽 농민공 숙소 화재로 수십 명이 사망한 사고 직후였다. 다음 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 취재차 찾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은 국가주석 2연임(10년) 제한 규정을 철폐하는 헌법 개정이 이뤄진 역사의 현장이었다. 숨돌릴 틈도 없이 미·중 무역전쟁이 터졌다. 2019년 6월 홍콩 내 반정부 시위 사태가 일어나 반 년간 이어졌다. 그해 말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대규모 발병했다. 사태 초기 늑장 대응과 정보 은폐 의혹이 불거졌다. 코로나19 위험성을 알렸다가 당국의 징계를 받은 뒤 사망한 의사 리원량(李文亮) 사건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최대의 정치적 위기였다. 시진핑 리더십을 비판한 지식인과 네티즌들의 입은 틀어 막혔다. 도시 봉쇄로 전염병 확산을 조기에 막은 중국 정부는 경제 반등으로 반전에 성공했다. 시 주석은 올해 7월 1일 성대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를 예고하며 내년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에 버금가는 1인 체제를 공고히하고 있다.
신중국을 건국한 마오는 반우파투쟁(1957년), 대약진운동과 대기근(1958∼1961년), 문화대혁명(1966∼1976)을 거치며 1인 전제체제를 강화해 나갔다. 지식인에 대한 사상 통제와 인민공사(人民公社)를 중심으로 사회 통제망을 구축하는 한편, 미 제국주의 압박 등을 명분으로 민족주의를 동원해 자력갱생을 도모했다. 첸리췬(錢理群) 전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는 역작 ‘마오쩌둥 시대와 포스트 마오쩌둥 시대 1949∼2009, 2012년’에서 “최고 영수의 절대 권위를 강화하고 사상 및 여론, 특히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면서 애국주의 기치를 든 국가주의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지도자는 마오 시절 회귀 의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시 주석 시대를 정확히 예측한 셈이다. 당 안팎의 반대 목소리는 철저하게 짓누르면서 사회주의 제도 우위를 내세워 공산당 영도의 거국(擧國)체제를 구축했다. 이제 미국 패권을 따라잡는 중국몽(中國夢)으로 중화중심주의 완성을 노리고 있다.
중국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1881∼1936)은 중국 근세사를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 과제’로 정리했다. 이를 중국 현재에 적용하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실현(근대 극복)으로 가고 있지만, 자유·민주·인권 실현(근대 적응)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그동안 현장에서 만난 중국 인민과 지식인들은 작지만 의미심장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모든 연구 주제와 과정, 내용을 공산당 중앙이 감찰하고 있다.”(대학교수) “중국에 언론은 없다. 오직 하나의 목소리(one voice)만 있을 뿐이다.”(전직 언론인) “빈부 격차가 너무 크다. 농민공은 외곽에서도 쫓겨나고 있다.”(한 베이징 농민공) “공산당이 뺏으려는 홍콩의 자유와 민주를 지킬 수 있게 도와 달라.”(홍콩에서 만난 지식인) 올해 양회(兩會) 기간 베이징 하늘에 짙게 낀 미세먼지만큼이나 시진핑 체제의 앞날은 ‘시계 제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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