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송재우 기자
그래픽 = 송재우 기자
■ ‘文 정부 민주주의’의 반민주성 탐구 - ① ‘민주적 통제’와 ‘문민독재’

윤석열 사퇴 유도하고, 감사원 업무 가로막고…
“국민 뜻” 앞세워 정권 감시·비판 기관 무력화

선출된 권력의 독재, 군부독재와 본질은 같아
법치 통한 ‘오차 수정’으로 민주주의 지켜내야


‘민주적 통제’란 선출된 권력이 관료조직의 권력화나 직업공무원의 일탈을 막기 위해 그 공무 수행에 간섭하고 개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 통제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뜻’을 앞세워 권력을 남용할 경우 투표로 위임받은 ‘제한적 권력’은 ‘무제한 권력’이 되고, 민주주의는 ‘문민독재’로 흐른다. ‘거여(巨與)’가 장악한 국회가 권력 비리를 감시하고 수사하는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을 압박하거나,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잇달아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때 민주적 통제란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문민독재다.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민주적 통제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훼손시키는가.


◇문민독재로 가는 회랑

민주주의의 제일 중요한 목표는 권력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는 전제적인 독재정부의 출현을 막는 것이다(‘민주주의는 만능인가’, 55·82쪽). 문민독재란 일인이나 일당이 권력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는 정치형태다. 군부가 아닌 선출된 권력이 통치 주도권을 쥐었다는 점에서 군부독재와 주체를 달리하지만, 본질로 보자면 양자 간 차이가 없다. 선출된 권력이 선거를 통해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제한적 권력이라는 것을 잊고 무제한 권력을 사용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문재인 정권의 민주적 통제론은 그런 의미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통치자의 권력 남용은 민주주의의 타락을 부른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했던 민주주의 퇴보 현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적 위기 사태에서 국민은 조속한 위기 극복을 약속하는 카리스마형 지도자에게 표를 몰아준다. 둘째, 이렇게 집권한 지도자는 쉴 새 없이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 내고 공격한다. 셋째, 집권세력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독립적 기관들의 발을 묶거나 거세한다. 넷째,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거나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국민이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기 어렵게 만든다. 민주주의의 후퇴는 이렇게 매우 교묘하게, 전략적으로 진행된다(앞의 책, 8쪽).

민주적 통제를 앞세운 권력 남용은 셋째 단계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집권세력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독립적인 기관’들이란 주로 사법기관을 칭하는데, 한국적 상황에서는 사법부와 함께 준사법기관 기능을 수행하는 검찰·감사원 등이 포함된다. 현 집권세력은 종종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기관에 대해 민주적 통제를 행사해 왔다. 검찰개혁을 내세워 검찰의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방해하고 급기야 검찰을 해체하려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가 여기에 들어맞는다.

문민독재는 특성상 군부독재보다 국민이 덜 민감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문민독재는 알렉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언급했던 ‘연성독재(soft despotism)’ 혹은 ‘신형독재’와도 통한다(앞의 책, 9쪽). 하지만 장기집권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아래로부터 서서히 일어나는 민심 이반에 의해 대체로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정권을 제외하면 전 세계 대부분의 문민독재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국민의 뜻’에 담긴 함정

민주적 통제를 하면서 집권세력이 내세우는 명분은 ‘국민의 뜻’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은 늘 옳은가. 사실 적지 않은 경우 국민의 뜻이라며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은 신형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의 상투적 수법이다. 문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공권력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검찰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주문해 왔다. 하지만 무엇이 국민의 뜻일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국민의 뜻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말은 악용과 남용의 소지와 위험성이 아주 크다. 집권세력은 이 말로 국민을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져간다(앞의 책, 10쪽).

민주주의와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경구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다. 이 표현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로서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이 표현에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위임 권력 혹은 제한적 권력의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 민주주의의 근본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호에 있지만, 국가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온전히 지켜질 수 없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은 자칫 국민을 앞세운다면 권력이 무제한 행사될 수 있고 행사되어도 좋다는 의미로 새겨질 위험성이 높다(앞의 책, 30쪽).

국민의 뜻을 강조하는 통치자는 일부의 의사를 전체의 의사, 즉 J J 루소가 얘기한 ‘일반의지’로 치환하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거기에 반대하면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는다. 따라서 집권세력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촛불 정권’ 혹은 ‘국민을 위한 정부’ 등 표현만큼 공허하고 악용될 소지를 크게 안고 있는 표현도 없다.

말로는 ‘국민을 위해’라고 하지만, 그것이 결국 특정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권력 행사를 가리는 베일이나 연막이었던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은 마땅히 국민 개인의 것이어야 할 자유와 권리를 시나브로 국가의 손아귀로 이전하고, ‘자유의 빈사’ 상태로 이끌고 갈 위험성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앞의 책, 36쪽). 이는 문민독재로 가는 회랑을 안내한다.


◇민주적 통제보다 중요한 것

민주주의 국가에서 직업공무원과 관료조직의 일탈을 막기 위한 민주적 통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엔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 ‘법의 제약’ 속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한정된 권력과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앞의 책, 40쪽). 법의 제약이란 선출 권력이 직업공무원이나 정부 조직에 개입·간섭할 때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준수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법치라는 원칙을 저버리고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자유와 권리를 오롯이 향유할 수 있는 대상은 정치권력과 정치적 실력자들 말고는 없다(앞의 책, 51쪽). 적법절차의 준수는 집권세력이 민주적 통제라는 이름으로 문민독재화하는 것을 막아낸다.

둘째, 민주적 통제보다 앞서는 원칙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보장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언제든 국정 수행의 잘못을 고쳐나가는 능력에 있다. 이는 통치자와 집권세력이 안팎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에 노출돼, 그들의 잘못된 선택이 수정되도록 함으로써 가능하다. 즉 민주주의 국가는 통치자가 제한적 정부의 선을 넘어서는지를 언제라도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다(앞의 책, 41쪽).

이것이 민주주의의 ‘오차 수정(error correction)’ 기능이다. 선출된 권력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국정 운영과 권력 행사를 바로잡으려는 이 같은 움직임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순적 활동이 경쟁하고 결합하고 공존할 때 비로소 국정의 혁신과 역동성이 생긴다. 오차 수정을 승인하지 않는 권력은 건전하지 않다. 모순을 회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민주주의의 수준은 낮아진다(앞의 책, 68쪽).

서울행정법원(재판장 조미연)이 지난해 12월 1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해 내린 결정문은 집권세력의 민주적 통제를 가장한 문민독재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당시 결정문의 핵심은 “검사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 권한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 검찰청이 소속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도 최대한 간섭받지 않고 행사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집권세력이 자신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민주적 통제라는 이름으로 억제하고 방해하려는 시도가 헌법 취지와 법의 정신을 몰각(沒却)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행태가 민주주의를 문민독재로 내몬다. 문재인 정권이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허민 전임기자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저술팀


■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저술팀

김영평 고려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 배수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이민창 조선대 행정복지학부 교수,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 김서영 미 콜로라도 덴버대 공공정책학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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