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동관 1층에 있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흉상 앞으로 환자들이 오가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동관 1층에 있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흉상 앞으로 환자들이 오가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 ‘나눔문화 산실’ 아산재단 설립

주식 절반 출연해 재단 세우고
의료취약 정읍에 병원 개원도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지난 15일 찾은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동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절차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1층 한가운데 고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청동 흉상’이 한눈에 보였다. 바로 옆에는 정 명예회장의 일대기와 업적을 정리한 글귀가 새겨진 대리석이 있었다. 그 글에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로 아산사회복지재단(아산재단)을 설립했다는 대목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정 명예회장의 ‘나눔의 정신’은 아산재단을 통해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동관 오른쪽 벽면에는 ‘기부자의 벽’이라는 공간이 있다. 전체 갈색 바탕에 흰색 글씨가 새겨진 이 벽은 가로 16.2m, 세로 2.6m 크기다. 이 대형 벽면에는 기업을 비롯해 유명인,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아산재단에 기부한 이들의 상호·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김광식 서울아산병원 대외협력팀 차장은 “기부자들과 후원받는 사람들을 잇는 이 벽이 우리 사회에 나눔 문화를 더욱 확산시키는 디딤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신관에 있는 ‘아산기념전시실’은 성실하면서도 소박했던 아산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 명예회장 일생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는 전시실 입구에는 그의 흑백 가족사진이 맨 먼저 관람객을 맞이했다. 이 전시실은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 여전히 하루 평균 50여 명이 다녀간다고 아산재단 측은 설명했다. 전시실 중앙에는 정 명예회장이 청년 시절 ‘복흥상회’라는 쌀 도매상에서 점원으로 일할 당시 타고 다녔던 쌀가마니를 실은 자전거 1대가 놓여 있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성실했던 정 명예회장을 눈여겨본 쌀 가게 주인이 훗날 가게를 그에게 넘긴 이야기는 유명하다. 안으로 더 들어가니, 정 명예회장의 낡은 구두 3켤레와 그의 소박한 방을 재현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평생 애착을 가졌던 충남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로 ‘현대서산농장’에 있는 작은 방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이 주로 발길을 멈추는 곳은 단연 아산재단 설립 배경을 설명한 전시 공간이다. 재단 측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1977년 7월 1일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자신이 소유한 현대건설 주식 절반(당시 시가 500억 원)을 출연해 공익재단인 아산재단을 설립했다. “인류에게 가장 큰 2가지 고뇌는 질병과 빈곤입니다. 현대의 재산을 어려운 사람을 위한 일에 뜻있게 쓰고 싶다는 것이 저의 오랜 소망이었습니다.” 정 명예회장이 당시 기자회견에서 밝힌 아산재단 설립 취지다. 이때부터 아산재단은 의료사업을 중심으로 사회복지사업, 장학사업, 학술연구사업 등을 활발하게 펼쳤다.

아산재단은 당시 인구 22만여 명인 소도시 전북 정읍시에 맨 먼저 ‘정읍아산병원’ 문을 열었다. 의료취약 농어촌 지역에 최신 시설을 갖춘 대규모 병원을 설립한다는 사업 계획에 따른 것이다. 정읍아산병원은 재단 설립 2개월여 만에 기공식을 했고, 재단 설립 1주년이 되는 1978년 7월 1일 개원식을 열었다. 아산재단은 이후 전남 보성(1978년 11월), 충남 보령(1979년 2월), 경북 영덕(1979년 3월), 서울(1989년 6월), 서울 금강(1989년 9월), 강원 홍천(1989년 12월), 강원 강릉(1996년 11월) 등에 잇달아 아산병원 문을 열었다. 전국 4412병상 규모다. 그중에서도 서울아산병원은 2715병상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 병원으로 성장했다. 하루 평균 입원환자만 2600명, 외래환자는 1만2000명에 이른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타티스타가 선정한 ‘2021 세계 최고 병원’(국내 1위, 세계 3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 명예회장이 몸소 실천한 나눔 경영이 그가 평소 강조해온 ‘청지기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경영자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기업을 수탁해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라는 게 정 명예회장의 평소 지론이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요즘 뜨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 명예회장이 처음 사업할 당시엔 (일반인들이) 병원을 제대로 가지 못할 정도로 참혹했다”며 “지금의 ESG보다 더 필요한 발상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욱 아산의료원장은 “정 명예회장은 복지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1977년 가난과 질병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했다”며 “설립자 20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그분의 삶과 정신을 기리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이웃이자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곽선미 기자 gs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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