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선거 후보 단일화는 고통스러운 용단(勇斷)을 요한다. 후보 옆에 훈수 두는 사람이나 식솔이 많을수록 이 외로운 결정은 힘들어진다. 각양각색의 훈수에 흔들리게 되고 신경 써야 할 주변인들의 이해관계에 심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여건을 무릅쓰고 용단을 내릴 수 있는지는 그 정치인의 그릇에 달렸다. 국가권력을 행사할 만한 그릇인지, 애초에 정치를 하지 말았어야 할 그릇인지.

용단으로 큰 그릇임을 보여준 예로, 1970년 신민당 의원이었던 김영삼을 들 수 있다. 1971년 대선을 앞둔 전당대회 경선에서 김영삼은 최다 득표를 했다. 그러나 과반에 미달했고, 결국 결선투표에서 김대중에게 패했다. 뒤집힌 결과에 각종 소문이 퍼지며 윤보선·장준하 등 여러 인사가 불복, 탈당하는 등 시끄러웠다. 그러나 당사자 김영삼은 주위의 어수선함에 동요하지 않고 깨끗이 승복하며 김대중의 손을 들어줬다. 전국 지원 유세에도 앞장섰다. 그만큼 큰 그릇임을 보여주었기에 이후 민주주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런 멋진 경우는 흔치 않다. 경선 결과에 불복해 소속 당을 망가뜨리고 자기도 몰락하고 결국 국가의 정치를 비정상으로 몰아간 정치인이 많다. 이인제라는 이름은 불복의 대명사가 됐다. 다른 정당 소속 후보들 간의 단일화는 더욱 힘들다. 특히, 엇비슷한 위상과 인기를 누리는 후보들이 그렇다. 민주투쟁 동지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1987년 단일화 실패는 긴 흑역사의 대표 사례다.

지금까지의 역사야 어쨌든, 2021년 현시점에 후보 단일화는 시대의 필연이다. 나라가 거대한 이분법적 구도에 갇힌 시국에 여권이든 야권이든 단일화 실패는 곧 선거 패배를 뜻한다. 정치 양극화는 한편으로 거시적 추세에 의한 것이다. 억눌렸던 이념적 열정을 분출시킨 탈냉전, 적응자·부적응자 간격을 넓힌 탈산업, 중간 조정이 힘든 문화 가치관을 부각시킨 탈물질주의 등 전환기적 추세가 정치 양극화를 초래했다. 여기 덧붙여, 내 편만 바라보고 반대편은 다 적폐로 모는 현 정권의 전략적 극단주의가 양극화를 악화시켰다. 이 상황에서 여야 각 진영의 단일화는 자연스러운 일이 됐고, 만약 한쪽에서 일이 뒤틀린다면 시대적 필연을 거스르는 셈이 된다.

단일화 여부 못지않게 단일화 이후 탈락자의 행보가 중요하다. 호각지세의 각축에서 패배한 사람이 아쉽더라도 웃으며 승복하고 상대의 본선 승리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국민은 그 사람이 얼마나 큰 그릇인지 느끼며 후일을 기약하게 된다. 정치 대장정에서 기회는 또 오게 마련이다. 나아가, 그런 아름다운 모습은 매일 정치권의 추한 모습에 우울해 하는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어 국가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여권은 일방적 형세라 차치하고, 난형난제인 야권 쪽 단일화의 당사자인 오세훈과 안철수는 한국 정치사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팽팽히 맞선 둘 중 누가 이겨도 국민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밀린 이는 할 말이 많고 주변 눈치도 봐야 하겠으나, 다 덮고 승자를 돕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리멸렬한 야권, 나아가 정치권 전체에 회생의 불씨가 퍼져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기할 수 있다. 국민은 그런 큰 그릇의 인물을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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