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고 싶은 어르신을 만났을 때 “인생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말하곤 하죠. 사진 에세이 ‘신신예식장(한승일 글·사진, 클)’을 통해 이 예식장 백낙삼(90) 사장과 최필순(80) 이사 부부의 이야기를 접하고 딱 그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몽고정길. 3·15 의거 기념탑 뒤편 3층짜리 낡은 건물에 백 사장 부부의 오랜 직장이 있습니다. 간판에 큼지막하게 적힌 ‘완전무료’라는 글씨가 보여주듯, 지난 1967년 6월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55년째 예식비는 무료입니다. 오직 사진값만 받았는데요, 개업 당시 6000원으로 시작해 나중에 70만 원까지 올랐지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사회봉사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2019년부터는 그마저도 안 받습니다.

지금은 노부부 둘이서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예약만 잡히지만, 한때 십수 명의 직원과 함께 하루 17건의 결혼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인연을 맺은 부부만 1만4000쌍. 백 사장의 수첩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젊은 부부나 궁핍한 삶 때문에 결혼식을 미뤄뒀던 ‘묵은 부부’ 등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에는 갑자기 예약이 폭증했었고, 최근에는 나이 든 신랑과 동남아시아 등에서 온 젊은 신부의 결혼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유원지 등을 떠돌며 장당 20원짜리 사진을 찍어주던 ‘거리의 사진사’로 출발한 백 사장이 무료 예식장 운영을 결심한 것은 가난 때문에 결혼식을 미뤘던 자신의 경험 때문입니다. 그 또래들이 대개 그랬듯, 백 사장 부부는 결코 순탄치 않았던 인생을 참 열심히도 살았습니다. 항상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꼼꼼히 기록하고 실행에 옮김으로써 위기를 돌파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생을 진정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혼자만이 아닌 ‘같이 잘사는 삶’을 택한 점입니다. ‘재화에 너무 과욕 부리지 말 것’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할 것’ 등이 적힌 가훈에는 항상 나눔과 배려를 잊지 않은 노부부의 유쾌함이 녹아 있습니다. 사진값마저 떼어먹고 사라진 부부를 찾아갔다 그들의 궁핍을 확인하고 결국 액자까지 만들어 선물한 이야기, 신신장학회를 만들어 신신예식장에서 결혼한 부부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 이야기 등 미담이 끝도 없습니다. 예식장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의 결혼식 장면을 찍을 정도로 명소가 됐습니다. 백 사장도 카메오로 출연했습니다. 신신예식장을 방문했을 때 운이 좋으면 백 사장이 직접 개발해 대장암을 이겨냈다는 백초차를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차 향이 주인 부부를 닮았을 것 같습니다. 한번 꼭 가보고 싶습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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