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알래스카 |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어떤 작품은 소재의 힘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강렬한 소재는 작품에 짐이 되기도 한다. 독자는 소재 자체보다는 그 소재가 재현되는 방식과 작가의 시선, 만져지는 이야기의 구체적 질감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잘 다루기만 한다면, 각별한 소재는 걸작이 탄생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안녕, 알래스카’는 뇌전증을 지닌 스벤과 같은 6학년 2반의 친구 파커의 이야기다. 스벤은 뇌전증으로 겪게 될 수 있는 응급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도우미 개와 함께 다닌다. 하얗고 커다란 그 개의 이름이 알래스카다. 파커는 알래스카를 보자마자 한눈에 자신이 키우던 개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파커는 어린 막냇동생에게 심각한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사랑하는 알래스카와 억지로 헤어져야만 했다. 이 책은 이제 스벤의 개가 돼버린 그리운 알래스카를 잠깐이라도 만나고 싶어서 한밤중에 복면을 뒤집어쓰고 스벤의 집을 찾아가는 파커의 모험으로부터 시작된다. 파커는 스벤이 불시에 경험하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스벤은 알래스카를 잊지 못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파커의 행동을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둘은 조금씩 상대가 어떤 상태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파커는 자신의 가장 큰 비밀이자 두려움의 근원인 총격 사건의 전말을 스벤에게 털어놓는다.

두 명의 6학년 어린이와 한 마리의 개가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뇌전증이나 총격사건은 접근하기 쉬운 소재가 아니다. 작가 안나 볼츠는 알래스카라는 뭉클한 중심점을 활용하면서 예민한 대목이 있는 이 소재들을 부드럽게 엮어낸다. 특히 스벤과 파커의 시점을 오가는 구성과 현재형의 문장은 이들의 고립된 내면을 개별적으로 파고드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뇌전증은 적지 않은 독자에게 생소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스벤은 연민의 가능성을 차단한 채 이 경험을 상세하게 표현한다. 파커가 총격 이후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도 과장이 없다.

‘나만의 행성’에 갇혀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다른 누구도 이 우주 어딘가를 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오승민 작가가 그린 표지는 그 든든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용감한 생존자이기도 한 파커는 다른 사람들도 화성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제 우리가 함께 세상을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올만한 이야기는 다 나온 것 같지만 불멸의 고전은 오늘도 탄생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작품이다. 252쪽, 1만4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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